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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이 Jan 01. 2024

어쩌다 보니 동유럽 #16

슬로바키아 : 브라티슬라바

 프라하를 떠나기 전날 저는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물론 굳이 떠나지 않고 프라하에 머물면서 좀 더 즐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첫 유럽 여행인 만큼 좀 더 돌아다니고 싶었습니다. 많은 블로그를 뒤져보다가 선택한 곳은 바로 부다페스트였습니다. 그런데... 그냥 가면 또 좀 아쉽지 않겠습니까. 결국 가는 길에 도시 하나를 경유해서 가기로 했고, 그 도시가 바로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였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기차를 타고 브라티슬라바로 향하는 길은 상쾌했습니다. 기차를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리의 풍경은 하얀 눈으로 덮인 초원으로 바뀌었고, 서서히 밝아지는 모습도 멋있었습니다. 도착 후 짐 보관소에 짐을 맡기고 우산 하나, 작은 가방 하나만 들고 무작성 역을 나왔습니다. 역을 나오자 거리에는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고, 눈 내리는 유럽의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습니다. 우산을 쓰고 거리를 걷기 시작했을 때는 정말 좋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좋은 느낌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눈이... 와, 정말 눈이 너무 많이 내리니까 점점 버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역에서 성까지 걸어서 30분이라길래 '그 정도쯤이야.' 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쓰나 마나 한 우선을 손에 쥔 채 눈에 젖고, 땀에 젖은 채로 힘겹게 걷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성이 언덕 위에 있는 건 당연한 일인데, 왜 언덕 위에 있는지 원망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눈과 땀으로 젖은 몸을 이끌고 우여곡절 끝에 성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추워서 그런지 얼른 들어가 눈도 피할 겸 성을 구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성 내부의 전시물들은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게 없었습니다. 그전에 방문했던 뷔르츠 부르크 성 내부 전시가 인상이 커서 그런지 뭔가 크게 인상에 남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성 지하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우선 성의 지하를 가본 적이 처음이기도 했고, 괜히 성 지하라고 하니까 뭔가 어두운 일이 한 번쯤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 해봤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많이 방문을 안 하는 곳인지 좀 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습니다. 물론 거기서 사진도 찍으면서 돌아다녔지만 말이죠.

 성을 구경 후에는 바로 점심부터 먹으러 갔습니다. 가는 길에 마을을 지나치기도 했는데, 눈이 심하게 내리는 날씨라 그런지 돌아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식당에 도착해 스테이크 주문을 한 뒤 혼자 멍 때리던 중 한국어를 듣게 되었습니다. 반가움에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한국이 세 분과 눈이 마주치게 됐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세 분과 합석하여 점심을 같이 먹게 되었습니다. 점심을 먹으면서 들어보니 세 사람 모두 동행은 아니고 '유랑 카페'를 통해 이곳에서 만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여행에 대한 정보 공유와 오후에 관광지 한 곳을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갑작스러운 파티가 생겨 조금 당황했지만, 사진 찍어줄 사람이 생겼다고 생각하며 같이 '파란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물론 실제 이름은 '성 엘리사벳 성당'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직접 가서 보니 왜 '파란 성당'으로 알려져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말 그대로 정말 파~~~ 아란 성당이었습니다. 근데 색감이 너무 예쁘고, 외부 무늬도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제가 방문한 날은 문을 안 열어서 저는 외부 구경은 못했지만 외부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구경할만한 성당이었습니다.

성당까지 구경 후 저는 갑작스러운 파티와 헤어진 후 부다페스트로 가기 위해 역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눈보라 몰아치는데... 진짜 그냥 브라티슬라바에서 1 박할까 하는 마음이 솟구쳤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어차피 짐도 역에 있어서.... 아, 그리고 역으로 향하는 길에 삼성 핸드폰 광고를 봤는데 뭔가 외국에서 한국 기업의 광고를 보니까 참 좋더라고요. 뭐랄까 이유 없는 뿌듯함(?) 같은 게 느껴졌습니다. 눈 때문에 힘들기는 했지만 막판에 얻은 뿌듯함으로 짧은 브라티슬라바 관광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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