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방에는 초등 3학년 남자아이 상우가 한 명 있다. 처음 이 아이를 어머님이 데려오셔서 혹시 초등학생은 받지 않는지 날카롭게 질문하셨다. 당시에는 착실한 초등학생 4, 6학년 남매가 있었기에 이들과 어우러지겠지 하며 흔쾌히 받았다. S는 별로 고민 없이 일단 일을 저지르고 보는 경우가 많긴 하다.
아이는 처음이라 어색하고 딱히 맘에 들지 않는지 어머니는 등록 의사가 확실해 보이는데
“저 여기 학원 다니고 싶지 않은데...” 하고 말끝을 흐렸다. S는 귀엽고 조그마한 아이를 애정이 가득한 눈으로 내려다보며
“난 그렇게 무서운 선생님이 아니야 하하.” 하면서 등록을 마무리하고자 애매모호한 상황을 웃음으로 덮었다.
아이는 상당히 똑똑했다. ‘띵동’하고 문을 열고 공부방에 오면서부터 재잘거리며 말을 잘했다. 백과사전을 펼쳐놓은 듯 온갖 상식이 가득하고 엉뚱하기도 하다. 아이가 하는 말을 듣고만 있어도 재미있다.
하지만 초등학생 아이다 보니 집중력에 한계가 있어서 영어를 한 시간 내내 할 수가 없고 놀이시간이 필요했다.
이제 같이 놀아 줄 친구도 한 명 없으니 어쩐담? S는 이 아이가 작은 블럭을 조립하는 걸 좋아하는 걸 발견하고 블럭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아... 남는 장사인가 싶지만 아이와 몸으로 놀아 줄 체력도 부족하니 돈으로 때울 수 밖에는.
다만 그 블록이라는 것이 아이가 마리오를 비롯하여 점점 비싼 걸 요구하기 시작하고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지출을 줄이고자 아이가 즐겨한다는 체스판도 가져오라 했다.
아... 그놈의 체스 규칙이 얼마나 어렵던지... S는 이 아이는 영재가 분명함을 알게 되었다. S의 공부방에는 어째 영어만 못하는 수학, 과학 영재들이 속속 들어오는 듯 하다.
그리하여 블록, 체스를 거쳐 각종 보드 게임도 하나 둘 구입하기 시작했다. 연말에는 공부방에서 파티를 열 계획이어서 겸사겸사 아이와의 놀이시간도 채우려 구매했다. 놀이 시간에는 영어 동요를 틀어놓고 영어를 주절거리면서 하면 된다.
어느 날인가는 아이가 블록을 한 줄로 200개 연결하면서 쭉 방에 늘어놓고 있었다.
S는 뻘쭘하니 옆에 서 있다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장난을 쳤다. 아이가 연결하고 있는 블록을 끊어놓으면서. 그러면서 언젠가 아이가 했던 것처럼 부러진 블록을 들고 칼싸움을 걸었다.
아이는 별 것 아닌 장난에도 까르르 웃으며 신이 난다. 결국 칼싸움을 하면서 블록을 온 방에 흩어놓으며 놀았다. 사방으로 흩어져 떨어지는 행복한 오색 블록의 비. 아이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 블록을 모아줬다. 아... 동심의 세계란 얼마나 자유로운지.
S는 점점 창의성이 늘어나는 걸 느꼈다. 각종 보드게임에 어제는 아이가 클레이로 호박을 만들어준다기에 냉큼 클레이도 주문했다. 이건 밑지는 장사가 아닌가. 그거 얼마나 한다고. 바위산 같은 광활한 무신 일주 S는 스케일이 크다. 암...그렇고 말고. 하하.
아이가 가만히 앉아서 달걀 반만한 호박을 만들어서 조막손으로 눈도 붙이고 모자도 만드는 걸 보니 참으로 사랑스러웠다. 정성껏 보라색 모자도 씌우고 별도 두 개 만들어 붙였다. 집중하고 있는 아이의 통통한 볼에 버섯 같은 파마 머리가 참 잘 어울린다.
오.. 사랑스러운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지. 암 그렇고 말고. 절절한 부모의 마음을 십 분의 일쯤 알 것 같기도 하고.
돈이야 더 벌면 돼지 그럼그럼...무에 어려우랴. 인생은 단순유식하게 살아야 하느니라.
S는 언젠가는 인자한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띄고 여유롭게 베푸는 할머니 선생님이 되고 싶다. 방 안에는 서고에 책을 한 가득 채우고 보드 게임도 하고 간식도 마음껏 나눠주면서 세상 행복한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