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는 병원에 정기검진하러 갔다. 비 오는 금요일 아침, 병원에 들어섰는데 자리마다 환자들이 꽉 들어차 있어서 놀랐다. 두 달에 한 번씩 올 때마다 보통은 두 세 명만이 앉아있는 여유로운 공간이었는데. 한 주를 마치는 금요일이어서일까 혹은 10월 말 건강 검진 막바지에 다다르니 다들 검진을 받으러 온 걸까.
내원자들은 조용히 앉아서 핸드폰 삼매경이다. 양복을 말끔하게 빼입은 청년, 캐주얼 룩의 젊은 남자, 흰 모자에 트레이닝 복을 멋스럽게 입은 중년 여성, 짧은 치마를 입은 상큼한 젊은 여성. 그들의 모습은 제각각. 다만 똑같이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과 눈을 맞추고 있다.
언제나처럼 똑같은 질문에 약을 처방받고 “독감 주사 맞으세요.”라는 의사 선생님의 지시가 내려졌다. 기본 건강 검진이나 내시경을 알아볼까 하고 왔는데 갑자기 독감 주사라니 순간 당황스러웠으나 또 다들 주사를 맞는 줄에 얌전히 앉았다.
진료를 마치고 S는 다oo에 들러 사야 할 물품이 몇 개 있었다. 핼러윈 파티용품들이 반짝거리며 눈길을 끈다. 공부방에서 파티하기로 했으니 이것저것 쇼핑 바구니에 골라 넣었다. LED 조명등, 반짝이는 가랜드, 호박, 귀신 등이 붙어 있는 머리띠 여러 개. 해골 모양 풍선 등. 여행 준비를 하는 것처럼 파티 준비를 하는 마음은 들떴다. 여행을 가기 전 가방을 챙기는 때부터 기분이 점점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처럼.
인생은 파티. 아모르 파티. 아모르 파티의 뜻은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운명 관을 나타내는 용어로 운명에 대한 사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헉.
S는 처음 이 단어를 들었을 때 아모르가 단지 사랑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사랑 파티라니 다소 유치하다고 여겼는데 무려 니체의 운명관라니 갑자기 고개가 끄덕여진다.
의심스러워서 다시 애용하는 나무위키를 찾아봤다.
아모르 파티(Amor Fati)는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의 라틴어이며, 운명애(運命愛)라고도 칭한다. 영문은 Love of Fate 또는 Love of One's Fate.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자신의 근본 사유라고 인정한 영원회귀 사상의 마지막 '결론'이 아모르 파티다.
아...천상병 시인님은 인생은 소풍이다 하셨는데 니체는 파티라 하시네. 파티가 무엇인가? 외국인들은 몇 사람 모여서 놀면 다 파티라 하더라. 처음에는 대단히 훌륭하게 차려입고 무도회 정도 가야 파티인가 했는데 조촐하게 집에서 모여서 피자에 콜라를 마셔도 다 파티다.
그렇다면 하루하루가 파티가 아닌가? 핼러윈 파티 한번 하면서 들떠서 온갖 소리를 늘어놓았다. S가 어린아이 같다는 데는 근거가 있다.
단돈 3,000을 주고 산 랜턴같이 생긴 등을 간신히 드라이버로 열고 건전지 세 개를 넣으니 반짝반짝 오색 찬란한 나이트 장 불빛이 들어온다. 와아아~ 이렇게 가성비가 좋다니. 마치 노래방에라도 간 듯 조명이 들어오니 흥이 나지 않을 수 없다.
내친김에 호박, 귀신, 박쥐 날개 등이 달린 각종 머리띠도 해본다. 자, 보정 앱을 켜고 사진을 하나씩 남기자. 인생이 즐겁지 아니한가. 아모르 파티. 즐거운 인생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겠다.
공부방에 아이들이 한 명씩 왔다. S는 이미 파티 계획으로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다음 주 금요일에 핼러윈 파티를 할 거야. 의상 콘셉트는 화이트 앤 블랙. 스티커를 붙이고 귀신으로 분장해서 사진을 찍자. 재밌겠지? 근데 우리가 파티하려면 일단 시험을 잘 봐야 해. 크리스마스 파티도 할 건데 시험 결과가 좋지 않으면 기분이 안 좋겠지? .“
이렇게 닦달을 하면서도 머릿속은 파티 계획으로 가득하다. 인생은 아모르 파티! 어떠한 운명이든 내게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