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각사각 Oct 19. 2024

십 대의 연애 상담

....

S의 공부방에는 이쁘장한 여학생이 한 명 있다. 지아는 조막만 한 얼굴, 동그란 눈, 마른 몸을 가진 현대인에 걸맞은 눈에 띄는 미인형의 얼굴이고 공부도 잘하는 편이다. 이번 중간시험에서 96점을 받아서 S가 그나마 동네 맘카페에 떳떳하게 광고를 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해 줬다.      


게다가 이 여학생은 시험이 가까울 때마다 “ 근데 선생님, 저 90점 넘으면 뭐 해주실 거예요?” 당당하게 물어서 S를 고민하게 했다. 물론 시원시원한 대인배로서 사주로는 바위와 같다는 무신 S는 물었다.     


“다른 학원에서는 어떻게 해주니?”

“100점이면 문화 상품권 3만 원, 90점 이상은 2만 원, 80점 이상은 만 원을 줘요.”

“그래. 그럼 그렇게 줄게.”     


이렇듯 생활력 또한 강한 학생이어서 중간고사 후 당당하게 2만 원을 송금받았다. 때론 이 여학생이 하릴없이 자기 고민 이야기를 주절거리거나 학생들이 없는 시간에만 골라서 와서 배가 고프다는 둥 하면서 당당하게 컵라면을 요구하여 먹거나 하는 것에 은근히 감정이 상하기도 했지만, 이 여학생은 S의 공부방에서는 단연 탑을 기록하는 소중한 고객이었다.      


이 학생은 그토록 열망하던 연애에도 성공하여 연애사에 관해서도 끝없이 늘어놓았다. 하지만 이 학생은 공부방에서는 내내 수다를 떨어도 자기 공부만은 알차게 챙겨서 하고 결과도 좋지 않은가? S는 마음을 내려놓고 이 연애사 또한 진지하게 듣고 상담을 하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상담사 자격을 따 놓았어야 했는데 푸념하면서.     

 

S의 또 다른 성인 수강생 중에는 사주 선생님도 한 분 계시다. 이분과도 몇 달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수업하고 사주를 본 이후로 S는 이 선생님과 다른 수강생분이 주변인들의 사주에 관해서 논하는 것도 자주 듣게 됐다.


S는 세상만사 다양한 이야기들을 듣고 산다. 토(흙)의 사주를 타고나서인지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물과 양분처럼 묵묵하게 흡수해야 하는 팔자인가 보다. 아무쪼록 그들이 마음속의 고민을 조금이나마 덜어서 흙 속에 묻고 싹을 틔워 아름답게 피어나기를 바랄 뿐.    

  

그리하여 지아의 연애 상담을 하면서 S는 호기심으로 종종 보곤 하는 사주팔자 앱까지 켜서 이 아이와 남자친구의 사주와 궁합을 보기에 이르렀다. 신기하게도 지아의 사주는 불, 남자친구는 물이었다. 호들갑을 떨며 알려줬다. 불같은 지아의 성미를 늘 잔잔하게 식혀주는 물 같은 남자친구라니.


S: 지아야, 여기를 봐라. ‘감정 기복이 매우 심한 편이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잘 컨트롤 하는 게 필요하다’ 라고 나와 있잖아. 그러니 남자친구에게 화를 풀기보다는 혼자 스트레스를 풀 방법을 찾아야 해.     


지아: 아....그러네요. 근데 우리 반에 요정같이 생긴 여자애가 있거든요. 성민이가 걔를 넋을 잃고 계속 보고 있잖아요. 화를 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요.     

지아는 억울하다는 몸짓까지 하면서 부르르 떨었다.      


S: 그럼 이성적이고 차분한 상태에서 앞으로는 그 여자애를 3초 이상 뚫어지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 마음이 무척 상하거든. 이렇게 말해야 한다고.      


지아: 아... 저는 그 애랑 오래 사귀고 싶어요. 성격이 진짜 좋거든요.     


S: 그래. 그러니까. 걔한테 성질을 부리고 해서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면 안 되겠지? 만나면 행복하고 즐거워야 만남이 계속 이어지는 거지. 아니면 결국 헤어지게 돼.      


최대 관심사인 남자친구와의 사이의 조언을 듣는 지아는 입을 살짝 벌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집중했다. 이로써 사주팔자까지 들먹이고 다독거려서 이 어린 연인들의 폭풍 같은 만남에 순풍이 불어오는 것인가.    

  

S: 그리고 넌 똑똑하고 성적이 잘 나오니 앞으로 선생님이 되어도 좋을 것 같아. 그러니 공부도 열심히 하고.      


S는 지아가 희망하는 대로 학원 선생님도 괜찮고 공부방도 추천한다며 진로 상담으로 비로소 방향을 틀었다. 인간은 어쩌면 본능적으로 자신의 타고난 성격이나 사주를 파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주 선생님은 때로 미신적일 만큼 사주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서 뜨악하게 만들지만, S는 사주를 인생에 참고 정도는 할 만큼 흥미롭다고 여겼다.      


나를 알고 너를 알면 백전백승이라지 않던가. 곧 돈벼락을 맞을 대운이 들어온다니 믿어보자. 사주팔자도 마음대로 골라서 믿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S였다.

사랑이 꽃 피는 공부방


이전 02화 공부방은 천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