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는 오전에 한 시간 여 운동을 마치면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먹고 나른해지려는 찰나에 공부방으로 향한다. 공부방에 가서 오수를 취해도 되니 일찍 출발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아무도 없는 텅 빈 공부방이 잠에서 깨어 조용히 맞아준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살짝 열어두고 좋은 향이 나도록 방향제에 오일을 조금 뿌린다.
전기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드립 백에 아메리카노 한잔을 내려서 마신다. 향긋한 커피향을 남기고 오후의 나른함이 공기 중으로 서서히 퍼져 사라지는 걸 바라보면서. 아직 수업 시간이 네 시간이나 남았네.
S는 피곤해지면 공부방 한 쪽에 담요를 깔고 눕는다. 겨울 이불까지 세탁해서 가져다 두었으니 잠깐 눈을 붙여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이만하면 여느 직장인 중에서도 최고의 근무환경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음악도 마음대로 골라 들을 수 있다. 삶에 믿음이 필요한 요즘에는 가스펠을 주로 틀어둔다. 아이들이 오면 취향에 맞춰 좋아하는 음악을 선곡해주기도 하고. 우리 소중한 공부방의 고객님들을 위한 작은 배려랄까. 간식도 젤리, 사탕, 과자 돌아가며 싫증 나지 않도록 준비해 둔다.
배가 고프시다면 제공할 컵라면에 콜라도 항상 준비해 두고. 이만하면 공부방인가 자선 사업인가 싶겠지만 소소한 간식 거리에 그리 큰 돈이 드는 건 아니다.
책을 좀 읽어볼까 하다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걸레를 들고 청소에 나섰다. 일상 생활을 하지 않는 십 여 평이나 될까 말까한 공간이니 먼지만 제거해주면 된다. 걸레를 들고 박박 바닥을 닦으며 운동이라고 여겼다. 세면대에 작은 얼룩이 보여 지저분해 보여서 스펀지를 들고 다시 닦아낸다.
띵동. 학생 한 명이 도착했다. 오자마자 “콜라 마실래?” 하고 다정하게 묻는다. “네” 아이들은 대부분 콜라를 좋아한다. 콜라가 아니면 얼음물, 믹스 커피 등 원하는 대로 준비해 드린다.
S는 이런 소소하고 따뜻한 시간이 좋다.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훌쩍 떠나가는 아이들도 있으나 그 또한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결과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마부가 아무리 말에 채찍질을 해도 말이 뛸 생각이 없다면 말짱 도루묵인 것과 같은 이치다.
가족이고 학생이고 연인이고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휴우~ 깊은 한숨 한번 들이 마셨다 내쉬고 각자의 삶을 존중해주는 수 밖에는. S는 어느 날 문득 깨달음이 와서 짧은 글을 하나 썼다. 강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다짐을 하면서.
강은 끊임없이 흘러간다. 이처럼 삶을 살아가고 싶다. 강이 흘러가는 것처럼 우리의 생도 흘러가고 그 가운데서 여러 사람과 사건을 만나게 된다. 그들이 여러 가지 물결을 만들겠지만 그 파문도 잠잠해질테니 끝없이 바다로 흘러가야겠다. 어떠한 생각도 그러하다. 오래도록 매달리고 전전긍긍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잠시 머무르다가 흘러가는 물처럼 살길 바란다.
또 다른 한 명의 아이는 어젯밤 잠을 못 잤다며 계속 꾸벅꾸벅 졸고 있다. 헛소리만 계속 늘어놓다가 아이스 커피까지 타서 주었건만 잠을 이기지 못하니 깨울 도리가 없다. 이 아이는 영재 소리도 들을 만큼 무척 총명한데 독특하고 자기 고집이 강하다.
“그저께 새벽 한 시까지 게임을 하다가 잤거든요. 오후 세 시에 잠이 깼어요. 그 때 갑자기 수행평가가 생각나는 거예요. 국어랑 영어가 있었거든요. 국어는 책을 읽어야 해서 200 페이지를 한꺼번에 읽었어요. 그 다음에 급하게 영어 수행을 외웠어요. 그래서 어제 또 잠을 못잤어요. 블라블라”
이렇게 구구절절 어제의 이야기를 늘어놓더니 가까스로 한 장을 풀고 나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잠이 들어버렸다. S는 이 아이를 도무지 깨울 도리가 없어 숨을 죽여 움직였다. 공부방의 하루는 이렇게 평화롭게 잔잔한 강물처럼 흘러간다. 그래도 S는 이번 달 말에는 신나게 할로윈 파티를 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놀 때는 놀아야지.
S는 가족과의 드라마로 한동안 골머리를 앓았다. 이제 그 드라마의 악역과 같은 주인공 역할도 벗어던지고 ‘트릭 오얼 트리트’를 외치면서 깔깔거리며 할로윈이나 즐기고 싶은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