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날 S의 삶은 평온했다. 그토록 바라던 잔잔한 호수 같은 삶. 아침에 충분히 잠을 자고 일어난다. 보통은 8시나 9시 정도. 아침 시간이 여유로우니 일어나는 시간은 제멋대로이다. 어젯밤 수업이 늦게 끝났다면 늦게, 좀 더 일찍 잠들었다면 그보다는 일찍. 몸이 원하는 대로 산다.
목요일은 장을 보러 가는 날이다. 근처의 마트 옆에는 작은 호수 공원이 있다. 아침을 먹고 나면 마트에 가서 주차하고 호수 주변을 세 바퀴 돌 예정이다. 건강하게 살아가고자 매일 적어도 한 시간은 운동하고 있으니. 간간이 예쁘게 심어놓은 꽃들과 반짝이는 호수를 슬쩍 보면서 힘차게 걷는다. ‘운동을 끝내면 카페 라테를 한잔 마셔야지.’
호수 옆의 카페에 들어가서 아이스 라테를 한 잔 마셨다. 옆 테이블에는 행사 준비에 한창인 사람들의 활기찬 토론이 이어졌다. 공무원인 것 같은 두 명의 남녀와 행사를 대행하는 대표 사이에 열띤 대화가 오갔다. 결국은 예산이 문제라는 대표의 단호한 정리. 인간에게 돈이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구나.
이제 천천히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마트 입구에는 가을을 맞이하여 새로운 옷들이 진열되어 있다. 자유로움의 상징 같은 청 재킷 몇 벌에 눈길이 간다. ‘가을옷으로 산뜻한 청 재킷이나 하나 구매해 볼까?’
S는 아직도 더위를 탄다. 갱년기에 접어들어서인지 시시때때로 열이 올라서 선풍기를 가까이 두고 살고. 이러한 형편이니 가을옷에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
마트에 가서 일주일 치 먹을 식량을 카트에 집어넣었다. 최저가만 고르던 습관을 조금 내려놓고 원하는 건 다 골라 넣는다. 그동안 바닥부터 다시 일어나 살아온 세월이 억울하기도 하고 보상 심리가 작동하나 보다.
계산대로 갔는데 직원분이 몇 마디 친근한 질문을 하셨다. S가 무심코 골라 넣은 인스턴트 떡볶이를 보더니
“이 떡볶이가 맛있나 봐요. 많이들 사시더라고요.”
“아, 잘 보이는 곳에 있어서요.”
S는 사실 장을 볼 때 직감적으로 눈에 보이는 걸 골라 넣을 때가 많다. 리스트를 적어가긴 해도 다분히 즉흥적인 편이다.
마트 아주머니는 “이 귤 맛있더라고요.”
하며 박스째 골라온 귤에 관해서도 한마디 하셨다.
S는 카드를 꺼내 들었는데 교통카드가 나와서 서둘러 신용 카드를 집어 들다가 연어와 광어가 한 줄씩 들어간 초밥 포장재를 건드려 떨어트리고 말았다.
아……. 뒤에서 기다리고 계셨던 여자분이 S보다 더 크게 탄식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S는 이렇게 다수에게 주목받는 상황이 당황스럽고 힘들었다. 누가 볼세라 얼른 바닥에 떨어진 초밥을 플라스틱 포장재에 쓸어 담았다. 마트 계산원분이 부리나케 나와서 바닥을 닦았다.
S는 포기가 빠르다. 내 잘못으로 떨어트렸으니 초밥 한 팩 정도는 신경 쓰지 않는다. 마음이 쓰렸으나 아주 잠시 떨어트린 것이니 집에 가서 물에 씻어서 먹을까 하는 생각도 스쳤고. 5 초안에 집으면 오염이 되지 않는다던데.
마트 아주머니는 끝까지 따뜻한 눈빛으로 “포장이 꼼꼼하게 되어 있지 않았다고 서비스 센터에 문의해 보세요.” 하고 S보다 더 안타까워했다.
S는 희미하게 웃으며 “괜찮습니다” 하고 카트를 밀고 나왔다. ‘나의 실수인데 그건 부당하다.’ 초밥 한 팩에 연연하기에는 세상에는 더 중요하고 복잡한 일들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