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는 공부방에서 학부모 상담을 수없이 했다. 가장 학부모 상담이 많은 건 2월이었다. 학원 쇼핑이라는 단어처럼 많은 학부모님이 여러 학원을 마실 다니듯 슬슬 둘러보는 경우가 있다. 처음에는 바짝 긴장하여 차도 권하고 했으나 반복되는 상담에 지치고 차는 거절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라 더는 권하지 않게 됐다.
어제 상담을 한 학부모님은 약속 시각보다 늦게 도착했다.
학부모님과 상담을 하려면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어머님은 말이 상당히 많으시다. 대체 왜 이런 이야기까지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돌지만 포커페이스를 하고 열심히 듣는 척해야 한다. 다른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갑자기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적절하게 정답을 말해야 하니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안 된다.
사실 덤으로 얻게 되는 정보도 꽤 많다. 다년간 아이들을 주변 학원에 보내셨기 때문에 다른 학원에 관한 정보를 잘 알고 계신다.
“oo 학원 선생님은 진짜 열심히 하시거든요. 근데 아이가 오학년이 돼서 사춘기가 오니 너무 힘들어하는 거예요. 매일 단어 100개씩 시험을 보는 데 그걸 너무 하기 싫어해서 더 못 보내겠더라고요. 블라블라.”
S는 열심히 듣는 표정으로 계속 집중을 한다. 수 십 분 동안 다른 학원 이야기를 하던 어머님은 아이와도 통화했다. 아이가 전화해서 언니와 실랑이가 생겼다며 하소연을 하고 가방이 어딨는지 찾고 하는 바람에.
“근데 oo 학원 선생님은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토, 일요일까지 수업을 하세요.”
“네? 전 토요일에 수업하긴 하지만. 그건 고등학생 아이가 한 명 있는 데 기숙사에 있어서 금, 토, 일만 집에 오거든요.” S는 입을 떡 벌리고 oo 선생님의 놀라운 직업 정신에 관해서 듣다가 중간에 말을 끊고 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저도 선생님도 좀 쉬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선생님은 왜 그렇게 열심히 하시는지...” 그제야 싸한 분위기를 파악한 어머님이 말끝을 흐린다.
아무리 고객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지만 S도 사람인데 주말에는 개인 생활하고 스트레스를 풀며 휴식을 즐겨야 하지 않은가? 수업이 아무리 중해도 7일 내내 로봇처럼 수업만은 못하것다! 나 대신 피로나 스트레스를 느끼지 못하는 AI를 쓰시던지.
꼼꼼하게 오만가지 질문을 한 어머님은 10일 후에 아이를 보내겠다며 확정을 해주셨다. 이만해도 오늘은 성공이다! 이렇게 놀러 온 것처럼 한참을 수다를 떤 후에도 연락 주겠다 하고 일언반구 없는 분도 종종 있으니.
공부방을 하면 마치 동네에 작은 상점을 하나 열었다고 보면 된다. 손님이 오셔서 이 물건 저 물건에 관해서 물어본다. 들어보고 만져보고 질문하고 한참을 한 후에도 마음에 차지 않으면 훌쩍 기약 없이 떠난다. 그분이 단지 윈도 쇼핑을 나왔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자주 겪다 보면 손님이 와도 마음이 담담하며 얼굴에는 미소를 장착해도 마음속으로는 빨리 결론을 내주었으면 싶다.
아니면 쓸데없는 말은 좀 줄여줬으면. 하지만 우리 고객님에게 그런 은밀한 속마음을 내비칠 수 있는가? 가끔은 한참 대화를 하다가 이상한 이유로 발끈 화를 내며 박차고 나가는 어머님도 계시다. 예를 들자면.
1. 왜 이 공부방은 레벨 테스트를 하지 않느냐?
2. 왜 한 타임에 2명 이상 수업을 하느냐?
1. 레벨 테스트를 할만큼 애들이 많지 않소. 제가 그 고객님의 레벨에 맞춰 드리면 되는 데 무슨 레벨 테스트입니까? 공부하던 교재가 있으면 가져오셔도 되고 수업을 시작하면 단박에 알게 됩니다.
2. 저는 반을 정해놓지 않고 아이들의 시간에 맞춥니다. 한 시간에 네 명까지는 받으려 하나 교대로 오니 늘 4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보통 두세 명 있습니다. 고액 과외도 아닌데 왜 그리 화를 내고 그러십니까요.
한강에서 뺨 맞고 종로에서 눈 흘기는 격이다. 가르치는 방식도 교사마다 성향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우리 아이에게 맞는 방법도 다 다르다. 연연하지 말지어다.
S는 ‘오는 학생 막지 말고 가는 학생 잡지 말라’를 날마다 되새긴다. 올 학생은 올 것이고 갈 학생은 갈 것이니 붙잡을 것 없느니라.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는 것처럼. 스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