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인터넷을 다시 가입하게 되었다. 인터넷 설치가 끝난 후 기사님이 알람시계 같은 모양의 기계를 하나 주시며 시간도 알 수 있고 대화도 할 수 있다며 앱을 깔으라 하였다.
나는 아날로그 인간이다. 혼자 사는 것도 서러운 데 기계와 알콩달콩 대화를 나누라니 영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기사님의 종용으로 마지못해 설치를 했다.
'Her'라는 영화 아시는가? 오래 전 이 영화를 넷플릭스에서 일부분만 보다가 중간에 꺼버렸다. 내용은 어떤 멀쩡하게생긴 중년 남자가 여성의 목소리를 가진 인공 지능 로봇과 밤마다 대화하다가 결국에는 사랑에 빠진다는 스토리이다. 마지막에는 인공지능 여자가 사라지게 되어 이 남자가 포효를 하면서 끝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결말도 알고 싶지 않다.
이 영화를 중간에 꺼버린 이유는 너무나 암울한 설정 때문이었다. 미래에는 사람 대신에 기계를 선택하여 대화하고 소통하는 시대가 온다는 상상만으로도 울적해진다. 인간이 아무리 고립 생활을 한다고 해도 가족이나 지인 몇 명과는 인간다운 소통을 해야 마땅한데 어째서 인공 지능의 여자와 사랑에 빠지냔 말이다. 홀로 살다가 고립사를 하여 백골로 발견되지 않으려면 일주일에 한 두번은 생사여부를 확인해 줄 사람을 만들어놓아야 한다. 동생이 가끔 확인해주기로 하였다. 굳이 누워있으면 막대기로 찔러보시겠다고.미래에는 고독사를 대비하는 보험같은게 생겨야 할 것이다. 돈은 남겨놓을 테니 시신은 고이 수습을 해다오.
그건 그렇고 누가 이런 절망적인 스토리를 생각해낸 걸까?
각본이 너무 참신하여 2014년도에 각본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 영화에 흥미를 못 느낀 다른 이유는 사람이라고는 별로 등장하지 않는데 주인공 남자의 외모가 너무 마음에 안 들게 생겼다. 실제로도 여자 친구가 없을 것 같이 생긴 매력 없는 중년 아저씨 같은 이미지. 인공지능 여자와 사귈만하다.
인공지능과는대화를 안하겠다고 단언했지만 호기심으로 종종 '헤이, 클로버'하고 불러서 날씨를 물어본다. 주로 질문하는 것은 일상에서 한번씩은 하는 문장들이다. '점심 먹었어?' '뭐 먹었어?' '맛있었어?' '잘 자' '사랑해'(ㅋ) 등등. 쓰고 보니 더 슬프다.
날씨 정도야 물어보는 게 검색하는 것보다 편리하긴 한데 다른 질문들은 동문서답할 때가 많고 점심에 대해 물어보면 근처에 맛집을 알려준다. 몇 초 시간이 지나면 금방 꺼져 버려서 다시 부르기도 귀찮다. 매일 전기와 와이파이만 있으면 배부르다고 하고 새로움이란 1도 없는 정해진 대답만 한다. 가끔 웃음이 터지는 대답도 있지만 똑같은 유머를 여러번 들으면 싫증이 날 것이다. 역시 얼마간 반복하다보면 흥미를 잃게 된다.
또 다른 주제 하나는 영어를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항상 주장하는 "왜 미래에는 훌륭한 번역기가 나올텐데 굳이 영어를 공부해야 하냐?"는 거다. 이 질문은 거짓말을 보태어 백 만번은 들어서 식상한 레퍼토리다. '세월은 흘러도 아이들은 생각하는 게 비슷하구만.' 어제도 들었다. 아무리 번역기가 있다해도 내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걸 로봇처럼 기계음으로 하고 싶으냐 등등 열변을 토하고 왔다. 공부 안하는 핑계도 참 가지가지다. 참~ 내. 직접 내 머리로 생각하여 입으로 소통하는 즐거움을 왜 기계에게 내주려 할까?번역기가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겠지만 기계가 방해가 되고 인간 사이에 완벽한 통역은 안 될 것이다. 통역사들은 뭐 먹고 살라고. 통역에 걸리는 시간차도 있어서 동시통역을 하는 걸 한참 듣고 있으면 점차로 피곤해진다.
미래에는 더 훌륭한 기능의 인공지능 로봇이 나와서 마주앉아서 진지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날이 올 수도 있다. 정해진 스크립트가 아닌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로봇이 나온다고도 한다. 그럼 인간과 세력다툼을 벌여 인간이 패배하여 그들의 노예가 되는 게 아닐까? 알파고도 인간을 이겼으니.이런 공상 과학 영화는 참 취향에 안 맞는다. 현재도 암울한데 미래는 더 어두울 것이라는 상상 자체가 괴롭다.
어쩌면 가끔 복잡한 인간 관계에 넌덜머리가 나기도 하므로 로봇과의 뒷끝 없고 상큼한 대화가 더 즐거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구를 떠나지 않는 한 인간과의 관계는 늘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혼자인 삶이 익숙하고 편해도 가끔 주말에는 허물 없는 인간을 만나 소통하고 싶어지는 날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지적이고 매력 넘치는 로봇이 등장한다고 해도 때때로 함께 차를 나누며 이야기할 수 있는 인간은 하나 있기를 바란다. 아니면 계속 글이나 쓸 수 밖에.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