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의 이유

by 사각사각

수업이 띄엄띄엄 있는 날이 있다. 오전에 수업을 하고 오후 시간이 비거나 수업 사이 사이에 이가 빠지듯 한 시간 정도가 뜰 때도 있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꽃핀 공원을 산책 겸 걷기 운동을 하거나 밥을 먹거나 심지어 어느 날은 수업과 수업 중간에 영화를 보기도 했다.

이번 주는 학원 수업을 더하여서 아침부터 밤까지 수업이 분산되어 있었다. 삼 일을 연속으로 풀가동을 하니 몸이 위험의 빨간 신호를 보내온다. '그만~ 슬슬 하지 않으면 가동을 멈추겠다.'


사십이 넘어가면서 몸에 여기저기 이상이 오는 걸 느꼈다. 이상이라 쓰지만 실제로는 노화가 오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과학적으로도 이미 이십대 초반부터 늙어간다. 제 아무리 노화라는 단어는 멀리하고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어도 현실은 현실이다. 사십대 초반에 하도 이곳저곳이 아파서 다른 사십 대 후반 샘에게 왜 이리 몸이 안 좋아지는지 물었다.

"샘, 나도 그랬어. 몸을 사십 년이나 사용했는데 기계라도 고장이 나지 않겠어?" 아하~ 그 순간 큰 깨달음이 왔다. 아파트도 이삼 십년이 되면 재건축을 하는데 몸을 참 오래도 사용했구나. 고로 나이듦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고 울며 나이 먹기라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두 개의 수업 사이에 시간이 빌 때마다 나의 작고 아늑한 집으로 돌아왔다. 잠시라도 편안한 집에서 쉬고 누워서 딩굴거리려는게 소소한 계획이었다. 며칠간 요리할 시간이 없어서 인스턴트만 잔뜩 먹었더니 금방 살이 오르는 게 느껴진다. 늙어서 소화도 잘 안 되는 편이고.

마침 냉장고도 텅 비어가서 근처 수퍼에서 야채와 몇 가지 반찬거리를 사왔다. 클랜징하는 기분으로 며칠간 야채를 몸에 가득 넣어주리라.

"몸아. 고생이 많구나. 이제 건강한 음식으로 먹어줄께. 토닥토닥. 마침 수업도 줄어들고 주말도 다가오니 며칠만 더 애쓰렴 ."


한 시간 정도만 따땃한 이불 속에서 딩굴거려도 몸과 마음에 여유가 스며든다. 못된 고용주를 만나 파업을 계획하려던 나의 몸도 슬그머니 만족의 미소를 짓고 있다. 저녁에 하나 남은 수업을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말을 하지 않아도 몸은 늘 신호를 보낸다. 귀를 기울여 눕고 싶은지 자고 싶은지 벌떡 일어나 나가고 싶은지 귀한 말씀을 들어드려야 한다. 계속 무시하고 가동하다간 큰 병이 나거나 갑자기 무기한 파업을 할 수도 있다. 급 과.로.사.같은.


나의 게으름을 욕하지 말라. 타고난 체력도 부실하고 배터리로 따지자면 하루 반나절 이면 방전이 되는 몸이다. 풀타임 근무는 시켜준다고 해도 도무지 무리이며 힘에 부치기 시작하면 주변에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과거의 직장 생활은 몸이 힘들다기 보다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더 극심하고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다. 일이야 워낙 잔머리가 잘 돌아가서 후딱 해치우는데 사사건건 꼬이는 인간 관계가 마음을 더 괴롭혔다. 지금까지 부실한 몸을 살살 달래가며 이만큼이나 움직이는게 다행이다. 맘대로 조절되는 프리랜서 일정도 딱 체질에 맞으며 마음에 들고.


미니멀을 괜히 실천하는게 아니오. 적당히 일하고 충분히 놀고 적당히 쓰겠소!

오후 잠깐의 산책은 행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