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하러 갔다. 퉁명스럽게 문을 열어준 아이는 쿵쿵거리며 공부를 하는 장소로 돌아간다. 누가 보아도 화가 났음을 온 몸으로 보여주는 뒷 모습이다. 이 아이는 원래 감정 기복이 매우 심한 편이라 별로 놀랍지도 않다. 선생님이란 직업을 가지다 보면 다양한 성격의 아이들을 아주 오랫동안 관찰할 수가 있다. 마음에 수양과 함께 도를 닦으면서.
고개를 숙이고 두 주먹을 꽉 쥐고 화를 삭히며 씩씩거리는 아이. 일단 수업을 바로 시작하기는 글러 먹은 상황이다. 인간은 항상 상황 판단이 빨라야 살아 남기 쉬운 법. 무슨 일이 있어서 화가 났냐고 다정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아이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로 너무 화가 나서 침대 위를 구르고 한참 혼자서 화를 분출했다고 한다. 이유인 즉슨 간단하게 말하자면 같은 반에 있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서로 사귀는 것 같아서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과 몰려가서 놀렸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들은 담임샘은 두 시간 동안 놀린 아이들은 자백을 하라며 혼을 내신 것 같다. 범인 색출 과정인건가. 샘도 참 집요 하신 편이다.
아이가 억울한 이유는 자기는 정직하게 바로 일어났는데 다른 친구들이 의리 없이 일어나지 않아서이다. '너는 참으로 정의로운 아이구나.' 그래서 나중에 가담한 사실이 밝혀진 아이들은 더 혼나고 자기는 조금 덜 혼났다고 한다.
잉? 공평하신 판결인데 그럼 된 거 아닌가? 사건 종결. 탕탕!
아이는 이 사실이 어머니에게 전달되어서 한번 더 오지게 혼날까 걱정이었다. 이 '오지게'라는 단어에서 나는 깔깔 웃음이 터졌다. 원래 웃음이 많다. 은근히 귀엽고도 흥미진진한 스토리이지 않은가? 오지게라니 참 구수한 단어일세. 인간사가 들여다보면 어른이나 아이나 비슷하게 유치하게 펼쳐진다.
시간은 계속 가고 있다. 한참이나 자기 분을 풀어 놓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시계를 한번씩 쓱 쳐다보게 된다. 벌써 15분이 넘어가는 것 같다. 이야기도 클라이막스를 지나 점점 시들해져간다. 딱히 반전도 없다. 그나저나 오늘 계획한 수업 분량은 다 채우지 못할 것 같아 마음이 초조해진다. 보라~ 자유분방하고 아메리칸 스타일이나 나름 계획성이 있는 인간이다.
아이는 머리가 똑똑하다. 초2 때부터 시작하여 학교에서 장난하다가 선생님에게 혼난 스토리를 계속 이어간다. 하도 소소하여 그 에피소드들이 기억도 안날 정도이다. 그동안 쌓이고 쌓인 한이 풀릴 때까지 들어주는 수밖에 없다. 한 20분 정도 후에 진정된 아이는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헤헤거리며 수업을 들었고 못 채운 분량은 숙제로 남겨주었다. '숙제를 하는 너는 힘들것이나 나는 아쉬울 것이 없도다!'
사람은 기분이 좋을 때고 있고 나쁠 때도 있다. 아이라고 해서 수업 시간에 화가 끓어오르는데 데 수업을 얌전히 들을 수는 없다. 오히려 성인보다 자기 감정에 충실하고 잘 조절이 안되는 편이다. 인간은 호되게 사회 생활을 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자기 감정을 억누를 수가 있다. 나이 먹고 밥벌이가 시급하면 감정이고 뭐고 없다. 신경이 좀 무뎌지고 기억력이 쇠퇴해지기도 하고.
누가 자기 이야기를 할 때는 일단 들어주고 억지로라도 웃어주고 우쭈쭈하며 동의를 해주어야 한다. 이건 성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우리가 한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하는 이유는 다만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지해주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충고나 조언이 필요할 때도 있으나 누구나 자기 인생의 답은 자기가 자알-알고 있다.
요즘에는 말 안 듣고 답답한 아이들의 수업을 마칠 때면 숙제 노트에 짧은 문장을 적는다.
'ㅇㅇ야. 오늘도 수업을 열심히 해서 고마워. 잘할 수 있어. 화이팅!'
이름에는 빨간 볼펜으로 꼭 하트를 하나 정성껏 그려넣는다.
애정 표현이 빈약한 편이지만 하트 하나는 잘 그릴 수 있다. 하트 정도야 뭐 돈도 안 드는데 얼마든지.
앞으로도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잔소리를 줄이고 사랑을 담아 메세지로 남겨보련다. 이렇게 교사가 되어간다.
I love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