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94 마스크라니?

미니멀한 관계

by 사각사각

상담을 하러 갔다. 타운하우스라고 불리는 곳이었는데 이 지역에 거주한지 십여 년이 넘어가지만 처음으로 방문하는 곳이었다. 외국의 호화 주택처럼 커다란 나무로 된 게이트가 주택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수위 아저씨가 리모컨으로 열어주시니 수십 초는 걸리는 것처럼 느린 속도로 천천히 열린다. 외부 사람들은 절대 들어오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거주지였다. 살다보니 이런 곳도 와보고 세상 신기하네.


집 호수를 찾아 주택 앞에 도착했는데 약속 시간보다 몇 십분 빨리 도착을 했다. 벌써 차 안의 공기는 한여름처럼 뜨겁다. 잠시 주변을 산책이라도 할까 하여 내려서 걷기 시작하였다. 커다란 돌 화분에 동그란 공 모양의 독특한 모양새의 꽃들이 있어서 사진이라도 찍으려고 다가갔다. 갑자기 그 집 위에 있던 진돗개가 미친 듯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귀가 따가워서 도둑처럼 슬그머니 다른 집으로 옮겨가니 또 다른 집 개가 마치 질세라 목청을 높여서 컹컹 짖는다. 높다란 계단 위에 있는 각자의 집안 사정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고만. 끝없이 위협적으로 합창처럼 짖어대는 개들 통에 잠깐 걷기도 어려웠다. 이런 사정이면 꽤나 넓은 이 타운하우스 내에서 산책이라도 하다가는 다른 집에 쉬고 있는 사람들을 다 깨울 판이었다.


상담을 하러간 어머니를 마주했다. 한참이나 수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거의 마음을 정하신 듯 매우 구체적으로 질문을 하였고 시간과 교재 등도 정하였다. 어머니가 갑자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더니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단다. 내가 쓰고 간 마스크가 문제라고 하였다. 일회용 마스크는 불안하니 반드시 KF94마스크를 착용해달라고 하셨다.


그제야 어머니가 착용한 마스크를 자세히 보았다. 침 한 방울이라도 침투할 새라 코 위까지 꾹꾹 눌러서 빈틈없이 세심하게 눌러쓴 마스크가 보였다. 마스크와 한몸? 마스크 아래 쪽에 KF94라고 선명하게 새겨진 글씨도 있고. 사실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에 KF94 마스크가 무엇인지 눈치를 챙기지 못하고 되물었다. 어머니는 이 정도는 당연한 것이 아니냐 하는 눈빛으로 본인이 직접 마스크를 제공할 수도 있다고 한다. 심히 번거로운데 그래주면 좋겠네.


결국 그 날 다시 확인 전화까지 한 어머니는 다음날 문자로 더 생각해 보겠다며 수업을 취소하였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도저히 KF94 마스크를 사서 매번 꼭꼭 챙겨 쓸 자신이 없었다. 고맙네그려.


몇 가지의 핑계를 대자면 이러하다. 일단 타고 나기를 여러가지 일들에 불안감이 적은 사람이다. 일회용 마스크 정도로도 충분히 방역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었다. 코 점막이 늘 부어있기 때문에 숨쉬기가 용이하지 않다. 처음에 마스크를 써야만 했을 때는 숨 쉬기가 곤란하여 이비인후과를 다시 방문할 정도였다.


나날이 숨이 막혀오는 느낌 때문에 치료를 받으려고 간 것이었다. 코로나로 죽기 전에 산소 부족으로 죽는다! 하지만 비염을 앓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비염은 금방 치료되는 질병이 아니어서 치료를 한들 잠시 뿐이고 딱히 효과가 없다.


처음에는 마스크를 쓰는 것이 불편하기만 했지만 날이 갈수록 매일 안팎으로 강요를 받고 스스로도 조심해야 한다는 자각이 들었다. 차차 옷을 챙겨 입는 것처럼 마스크를 쓰는 것이 익숙해지게 되었다. 하지만 마스크를 눌러 쓴 채로 수업을 한다고 상상을 해보자. 사람은 말을 하면 입김이 새어나온다. 그 입김이 마스크에 축축하게 젖는다. 윽~ 말을 할 때마다 내부의 축축함이 느껴지고 더러운 기분이 들것이다. 게다가 산소부족으로 숨이 점점 막혀온다. 폐소공포증이 약간 있는 듯.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에 따라 불안을 느끼는 정도가 다를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우울질을 타고 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 덕분에 지금까지 인류가 존속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나 같은 인간이 구석기 시대에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제일 먼저 독버섯을 겁 없이 덥석 따 먹었다가 그 자리에서 즉사를 했을 것이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고 독버섯을 야무지게 피한 불안감이 높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인류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불안감이 높은 사람들을 이해를 하려고 하지만 그 불안감이 상대방까지 힘들게 할 때가 있다. 불안이라는 것도 전염이 되는 감정이다. 멀쩡하게 희희낙락하며 긍정을 애써 끌어올려 살아가는 인간도 불안감이 높은 사람이 분위기를 조성하면 한번쯤은 재고를 해보게 된다. 뭐 귓등으로도 안 듣기는 하나. 코로나 시대에 살아가는 불안감이 높은 사람들이 날마다 더 고립되며 정신적으로 더 힘든 상태에 빠지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니 코가 석자이다. 네 걱정이나 하라!)


나의 주장은 이러하다. 코로나에 걸리면 물론 안 되고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킬 행동을 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인데 무기한으로 고립 생활을 지속할 수는 없다. 날마다 나가서 햇빛을 쬐며 산책도 하고 사람들과 적당히 교류도 하여야 사회성이 있는 인간답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코로나에 걸린 들 그렇게 쉽사리 죽지는 않을 것 같다. 아직까지도 면역력이 극도로 낮은 노인들 외에는 사망한 사례는 거의 없지 않은가?


인간의 운명은 살아온 이력에 따라 어느 정도는 정해져 있다고 본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코로나에 걸려서 죽는 다면 집에 가만히 있다가도 갑자기 쓰려져 죽을 운명이다.

불안감 자체가 낮고 대담무쌍하고 천방지축인 한 인간의 상념이지만 코로나가 언제 끝이 날지 알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날마다 조여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회용 마스크면 됐다. 말리지 마라!

맛난 것을 먹으며 잊어보자. 코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