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알수 없는 일이 많다.

미니멀한 생각

by 사각사각

다시 산책을 하고 싶어지는 날이 밝았다. 어제 수업 후 몸이 안 좋아서 초저녁부터 딩굴딩굴하다가 잠들었다. 간밤에 충분한 휴식이 이루어진 것이다. 잠이 보약이라는 건 진리의 말씀. 몇 시간을 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대략 장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 피로감이 심해진다. 노화를 느끼는 시점도 바로 장이 안 좋아짐을 느끼는 때부터였다. 돌도 씹어 먹을 나이라는 표현은 진정 근거가 있고 설득력이 있는 말이다. 답도 없고 듣기 싫은 노화에 대한 푸념은 이쯤해두고.


벚꽃은 이제 얼마남지 않았다. 절정을 이루었다가 마치 마흔을 넘긴 한 인간처럼 쇠하여가고 있는 것이다. 중 몸체는 자그마하나 아직도 꽃이 무성한 나무가 하나 있었다. 수명이 오래 되었는지 몸통에 파인 상처가 여러군데 있어도 풍성한 꽃을 피워내는 것이 신기했다. 막 나무에 다가가서 사진을 찍었는데 옆 벤치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 한분이 꽃이 너무 예쁘다며 사진을 찍어주기를 청하셨다.


동글동글 귀여우신 얼굴에 화사한 붉은빛 옷을 입은 할머니셨다. 시간도 남아돌겠다 기쁜 마음으로 사진을 서너장 찍어드렸다. 할머니는 카메라 렌즈를 보며 배시시 웃는 얼굴도 고우셨다. 내 하나의 남은 바람이 있다면 할머니가 되어도 곱게 늙고 싶은 것이다. 할머니는 약간 당황하신 듯 했지만 전신, 반신 등 의견을 물으며 열심히 찍어드렸다. 나름 사진을 잘 찍는다 자부하는 편이고 하니.


그리고 내 갈길을 계속 갔다. 나의 목표인 호수 주변 하루 세 바퀴 산책을 마쳐야 했으므로 열심히 걸었다. 가끔씩 멈추어서 막 꽃몽우리가 피어오르는 진분홍빛 철쭉에도 눈길을 주었다. 민들레가 한쌍인 것 처럼 꼭 붙어서 핀 것도 가까이 다가가서 부러운바라보았다. 사철나무의 수줍은 주홍빛 꽃도 살그머니 드려다 보았다.


그 할머니는 아직도 혼자 꽃감상을 하고 계실까? 마지막 세 바퀴를 돌고 같은 장소를 지날 때 그 할머니가 다시 내게 다가 와서 몇 분 전과 똑같은 멘트를 하셨다. 꽃이 너무 예쁘니 사진을 부탁한다며. 순간 어이가 없어서 '제가 아까 찍어드렸는데요.' 라고 하니 할머니가 아까 그 분이냐고 반문을 하셨다. 당황스러워서 묻지도 않았는데 운동중이라고 얼버무리며 다시 내 갈길을 갔다.


이 할머니는 이 햇살 좋은 오후에 벤치에 앉아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 걸까? 오만가지 엉뚱하고 하등 쓰잘데없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첫번째로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며 말을 건 후 기다리고 있던 일당과 함께 사기를 친다. 두번째는 할머니는 치매가 있으신 분이다. 몇 분 전에 사진을 찍힌 것을 잊어버리셨다. 세번째 할머니는 내가 찍어드린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너무 심심하셔서 대화라도 하려고 계속 다른 이에게 사진을 부탁하고 계신 것이다.


어느 상황이라도 영 찝찝하기는 하다. 할머니님이 그다지 집요하게 나를 붙잡지 않았으므로 아마도 인정하고 싶지 않으나 세번째 이유일 가능성이 가장 짙다. 사진이 마음에 안든다! (ㅎ) '말씀을 하시지 그러셨어요. 제가 지금은 시간이 넘쳐나니 얼마든 찍어드릴수 있습니다요.' 이렇게 때 아니게 화창한 오후에 또 하잘것 없는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다.


삶을 살아가며 느끼는 점은 어떤 한 상황에 대해 진실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진실이라 함부로 단정해서도 안된다. 당사자가 되어 보기 전에는 전말을 알 수가 없고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마다 각자 판단하는 입장이 다르다. 인간은 자기 방어 내지는 변호를 하면서 자기합리화를 하는 특징이 있다.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는 것이 스스로를 변호하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힘든 세상이기도 하다. 마치 미제 살인 사건과 비슷한 사건들이 현실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증거도 불충분하고 목격자도 없으며 시신조차도 찾을 수 없는 답답한 상황. 또 엄청난 논리의 비약을 하였으나 진실이 무엇이든 일말의 관심이 없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한가지 또 분명한 것은 굳이 알 필요가 없는 일도 세상에 많다는 것이다. 잠시 고민을 해보다가 오늘 점심은 뭐 먹을까나 생각하면 되는 거다. 미니멀리스트에게 인생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나저나 오늘 뭐 먹나?

이것은 봉황인가? ㅎㅎ 인간 세상만큼이나 다채로운 라떼아트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