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오늘의 산책은 건너뛰기로 했다. 어제부터 알수 없는 피곤함이 느껴져서 오늘은 한숨 쉬어 가기로. 그래도 햇살이 좋으니 오후의 여유로운 커피 타임은 놓치고 싶지가 않다. 잠깐 동네의 골목길을 사이사이 걸어서 카페로 들어왔다. 책 한권도 잊지 않고 챙겨왔고. 책 한권과 함께라면 오후 시간에 충분한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행복한 무소유'라는 책을 챙겨왔는데 불교 용어와 한문도 많아서 딱히 끌리지는 않는다. 한꺼번에 쭈욱 읽어내리기 보다는 한 챕터씩 곱씹으며 오래오래 읽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나도 존재가 없는데(공) 나의 소유물이 있겠는가 ?'라는 문장이 인상적이다. 사실 내가 없다는 심오한 개념은 아직 받아들이지를 못하겠다. 이것은 정말 산 속 깊이 들어가 묵언수행을 하면서 몇 달은 지나야 깨달을 것 같다. 마음수련을 하다가 너무 무료해서 '나란 존재는 없습니다.' 얼른 고백하고 누가 잡을 새라 뒤도 안 돌아보고 뛰쳐나올 것이다.
나는 오늘도 아침, 점심밥을 꼬박꼬박 챙겨먹고 딸기복숭아 요거트 플래치노까지 마시며 생생하게 존재하고 있는데 무슨 소리인가? 내가 죽은 뒤에야 내가 없어지는 것이다! 역시 자아가 강한 인물이군.
'공수래 공수거'라는 개념에는 깊이 공감한다. 이 세상에 빈 손으로 왔듯이 저 세상으로 갈 때도 어느 것 하나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이다. 가지고 간들 관속에서 나와 함께 썩어가거나 한줌의 재로 화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미리 유언을 남기자면 화장하여 바다에 뿌려주기 바란다. 그러니 죽기 전에 일찌감치 소유를 하나씩 비워가는 게 현명한 처사이다. 날마다 마음을 다스리며 무엇을 가짐으로서 느끼는 행복은 조금씩 버리고 있다.
봄 햇살과 기분 좋은 바람을 나의 것으로 가두어 집으로 가져갈 수는 없다. 하지만 원없이 바라는만큼 이 햇살과 바람을 느낄 수 있다. 소유하지 않아도 누릴 수 있으니 행복한 것이다. 공원에 차례를 다투며 피어나는 눈부신 꽃들도 꺽어서 소유할 수는 없다. 하지만 눈이 시릴만큼 보고 또 보며 사랑의 눈길을 줄 수는 있다. 창이 넓은 카페를 소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차 한잔 값을 지불하고 잠시 머물며 오후 한때의 은밀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도가 한참이나 부족한 내가 깨달은 무소유로다.(ㅎ)
더 가지고자 하는 마음을 줄이면 삶이 더없이 단순해진다. 단순함이란 아름다운 것이다. 모든 일이 신속하고 쉽고 정신적으로 자유로워진다. 그렇게 자유영혼이라 부르짖더니 점점 더 말릴 수 없는 자유인이 되어 가고 있다. 산 속에 들어가지 않아도 속세를 떠나지 않아도 무한히 자유롭다.
사람도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너는 나의 것이라 외쳐 보아도 그 '나의 것'이 '나의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걸 살면서 아프도록 깨달았을 것이다. 남편이나 자식도 법적으로는 묶여 있으나 영원하고 완전한 나의 소유일 수는 없다. 제 생각대로 의지대로 움직이는 재기발랄한 독립된 인격체이다.
이렇게 도를 닦으며 마음을 다스리면 말 안 듣는 아이도 마음으로부터 분리할 수 있고 오히려 더, 한 인간으로 존중하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모든 소유하고 싶은 인간과의 이길 승산이 1도 없는 싸움을 멈추시라. 내 뜻대로는 절대로 안 되는 나의 소유인 듯 소유 아닌 소유할 수 없는 존재이니라. 이렇게 날마다 세상만사에 대해 도를 닦아간다.
산속에 들어갈 필요가 없도다. 산 속에 들어가 대화할 인간이 하나도 없으면 언젠가는 나의 '무존재'까지도 가볍게 인정하게 될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산이고 산이 나로다.'이러면서.
그래도 완전히 소유할 수는 없으나 잠시라도 곁에는 두고 싶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외로운 존재는 또 소유할 수 없는 인간을 바라는구나. 아직 멀었구나 도에 이르기는. 역시 산에 들어가야 할까?
무소유를 독파하겠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