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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주 Sep 28. 2015

몸바사의 밤거리. 바다

[아프리카 여행 일기] Day 3.

Day1-2. 드디어 여행의 시작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


Day 3. 몸바사

7/8 03:52 PM
기차에 오른 지 31시간 52분 경과. 우와 드디어 도착
모기 18방 물림.     


결국 몸바사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4시. 날짜는 7월 7일이 아니고 8일. 14시간 걸린다고 했는데 32시간이 걸렸다. 하하. 애써 좀 좋은 점을 찾아보자면 기차표를 살 때 저녁 한번, 아침 한번. 총 두 번의 식사비용을 냈는데 18시간이나 더 걸린 덕분에ㅎ 점심, 저녁 두 번이나 식사를 더 얻어먹을 수 있었다는 거? 그리고 하룻밤 숙소도 굳은 셈. 그리고 우리는 어차피 아무런 일정도 세워놓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 영국 신사 s) 와는 다르게 금전적 손해를 보지도 않았다*.


*… 같은 기차를 탔던 영국 신사 두 분은 18시간 연착된 기차 때문에 120달러짜리 호텔과 150달러짜리 항공권을 날려야 했다. 점점 초조해지다가 마지막에는 결국 “I’m a gentle man but fxxk train!!”이라며 화를 내셨다. 직역하면 “난 신사지만 이건 좀 xx” 이런 느낌. 이럴 땐 옆에서 “기차가 나빴네잉~”하고 거들어줬어야 했는데 머리를 못 감아서 나는 그냥 나의 침대칸에 박혀있었다.     - 아프리카 여행 일정은 "헐겁게" 짜자 中  



하지만 메뉴가 계속 똑같아서 (훌훌 날아갈 듯한 쌀, 소고기 스튜 or 닭튀김, 야채볶음, 주스, 밀크티..) 점점 식사시간을 시들시들하게 보냈다. 첫 식사는 정말 즐거웠는데 마지막 저녁을 먹을 땐 깨작 깨작. 그리고 차라리 좀 더 연착이 되더라도 아침에 도착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새벽 4시에 아무도 없는 기차역에 우릴 떨궈버리다니. 기차역에는 말 그대로 그냥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서 뭐 탈 것을 구할 수는 있으려나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던 순간, 기차를 타는 내내 항상 잘 챙겨주고 선하게 웃어줬던 승무원 '마론'이 날 불렀다. 위험한 밤거리를 걷게 될 우리를 걱정한 마론은 "툭툭"을 모는 친구를 소개주기 위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툭툭은 뒤에 두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좌석이 달린 삼륜 오토바이?로 아프리카 현지 교통수단 중 하나다. 택시를 타야 되는 것 아닌가 걱정하던 우리에게 마론은 택시는 훨씬 더 비싸고 이 시간에 잡기도 어려울 테니 자기 친구가 운전하는 툭툭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믿음직하게 말해줬다. 마론의 친구인 툭툭 기사는 기차역 매점 주인 청년이었다. 응?. 방금까지 우리와 같은 기차를 타고 온 승객에게 콜라를 팔던 청년은 마론의 부탁을 받고 가게 셔터를 내리더니(?) 바로 툭툭을 몰 준비를 했다. 이야~ 이것이 진정한 투잡? 그는 지금 새벽 4시까지 하던 매점 장사를 우리 때문에 접은 건가? 상당히 당황스러웠지만 어쨌든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마론과 같이 사진을 찍고 페이스북 아이디를 교환한 후 툭에 올랐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툭툭은 매우 역동적이고 격한 교통수단이었다. 밤거리를 휙휙 달리는 툭툭 안에서 연신 폰으로 지도를 봐가면서 숙소가 나오길 기다렸지만 지도에서 홀로 동떨어져 우리를 조바심 나게 했던 숙소는 나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너무 많은 길을 헤매게 되어 툭툭 기사에게 미안해진 우리는 결국 숙소가 있음 직한 곳에서 적당히 내려 근처에 Resort라는 간판이 달린 건물로 일단 무작정 들어갔다. 하지만 너무 비쌌고 (리조트나 호텔 1박 비용은 우리가 검색해본 게스트하우스 가격의 거의 3~4배 정도였다) 어차피 방도 없어서 우리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시 나와야 했다. 친절한 주인아저씨는 밤거리를 그냥 걷는 건 위험하다며 툭툭 기사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새벽 4시 30분 경이었던 탓에 아저씨의 친구는 잠에 취해 제대로 대답 조차 하지 못했다. 주인아저씨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괜스레 미안해하시며 우리에게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곳을 가르쳐주셨다.


하지만 정말 걸어도 걸어도 그냥 평범해 보이는 집이나, 아주 비싸 보이는 호텔. 이런 이분법 선택지만이 놓인 길이 계속 이어질 뿐이었다. 호텔을 지나칠 때는 호텔 경비원 아저씨들에게 길을 물어보긴 했지만 새벽이라 그런지 게스트하우스처럼 보이는 건 거의 다 문이 닫혀있고 또 간판도 없어서 (하지만 날 밝고 나서 길거리를 나서니 간판이.. 그렇게 찾아도 보이지 않았던 간판이! 있었다..ㅎ) 계속 같은 거리를 왔다 갔다 하기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집집마다 전기 쇠창살이 달려있고,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울음소리만 들어도 아주 우렁차니 도둑 열댓은 잡을 것 같은 드센 개들이 왈왈 대는 밤거리를 어떻게 2시간 넘게 헤매면서 정신을 챙겼나 싶다. 17kg에 달하는 배낭을 메고, 거의 60시간(비행기 20시간 + 기차 32시간 + α)을 못 씻은 탓에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찝찝하기 그지없는 상태로 계속 걸으니 정말 별별 생각이 다 드는 동시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 개 짖는 소리 한번 정말 시끄럽네" "워낙 위험한 곳이니 개들을 많이 키우나 보군". 그런데 여기서 의식의 흐름이 "무서운 곳이니 빨리 어디 쉴 곳을 찾아서 벗어나야지"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저 개들은 그럼 내가 무섭다고 짖고 있는 건가? 아니 근데 솔직히 내가 쟤네들을 무서워해야 되는 거 아닌가? 좀 특이한 상황이네?" 이런 식으로.. 이상하게 빠지곤 했다. 지나고 보니 그렇게 의도치 않게 부정적인 생각을 비껴갔기에 좀 덜 힘들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ㅎㅎ


<참고> … 한국 대사관도 케냐 교민을 포함한 방문자들에게 갑자기 발생할 수 있는 테러 및 신변안전에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면서 특히 라무-몸바사 등 해안지역과 북동부 가리사, 만데라 등지의 방문을 최대한 자제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불안한 케냐」, 주간무역, 2015.6.12


고진감래? 인 줄 알았는데

결국은 우리는 아까 지나쳤던 호텔로 다시 돌아가 도움을 요청했고, 경비아저씨가 불러주신 택시를 타고 드디어 아침 6시 20분 경, 게스트하우스에 입성했다. 숙소는 화장실도 깨끗하고 샤워기 수압도 빵빵하고 에어컨! 도 잘 작동하고 와이파이도 됐다. 침대에 모기장도 있었다. 진짜 너무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그때의 행복감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지금 실실 웃음이 ㅎㅎ 잠시 쉬다가 오늘의 첫 끼를 먹으러 숙소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Butter Chicken과 Egg Masala, 그리고 rice와 ugali를 시켰다. 음료로는 망고주스와 메뉴판에 없었던, 주인 흑언니의 추천 주스. 그 기차역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질기디 질긴 닭고기가 아니라 우리의 치느님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아주 맛있는 치킨이었다. 요리 방식의 차이였을까. 마살라도 약간 매콤해서 우리의 입맛에 잘 맞았다. 동아프리카의 주식인 우갈리. 옥수수가루로 만든, 우리의 백설기와 비슷하지만 백설기에서 단맛을 전부 뺀 맛?ㅎㅎ 정말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무맛. 무. 無.. 뭔지 모를 흑언니의 추천 빨간 주스는 홍삼맛이 났다. 건강해지는 맛.


식사 후 숙소 주인 언니에게 물어 툭툭을 타고 근처의 Public Beach로 갔다. 드디어 오랜 고생 끝에 진정한 휴양지를 느껴보는구나 싶었지만 역시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바다와 꿀꿀한 날씨

내일 스노쿨링을 하려고 미리 예약을 하러 갔는데 살면서 우와. 진짜 이렇게 끈질긴 호객행위는 처음 당해보는 것 같았다. 마리오. 잊혀지지 않는 그 이름. 지금까지 만난 현지 흑인들 중에 가장 귀에 쏙쏙 들어오는 영어를 구사했다. 원치 않아도 자꾸 저절로 해석이 되던 마성의 마리오 영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부르지 않나, 분명 우중중하고 곧 비가 내릴 것 같은 날씨였는데도 이런 날이 원래 스노쿨링하기에 완벽한 날이라고 하고.. 이런 날이 완벽하면 일 년 내내 스노쿨링을 할 수 없는 날은 없을 거야.. 오늘은 그냥 예약만 하려고  거라고 했더니 내일은 손님이 더 많이 올 테니 예약금을 미리 내야지 스노쿨링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ㅎㅎ 이 해변에 관광객은 우리밖에 없고 다 현지인인데? 내일이면 여기로 관광객이 몰려 온다는 거니? 이렇게 대답했다가 왜 자기를 믿지 않냐며 나보고 패닉하지 말라고 꾸짖었다. 정말 꾸지람당하는 느낌. "패닉한 게 아니라 그냥 너가 너무 시끄러워서 정신이 없어서 그래"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이미 마리오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잠보*로 시작해서 하쿠나마타타*로 끝나는 노래를 아주 시끄럽게 부르며 나의 말대답을 차단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랜데 이렇게 나를 정신없게 만드는데 사용하지 말란 말이야..ㅠ 우리가 스노쿨링을 예약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자 마지막에는 나무 열쇠고리를 꺼내들며 "이거 정말 멋지지 않니?"라는 뻔한 말로 마리오 영어의 새로운 챕터를 열었다.


*잠보 (Jambo) : 안녕. 기본적인 인사로 쓰이는 스와힐리어

*하쿠나마타타 (Hakuna matata) : 걱정하지마! No  Problem이라는 뜻의 스와힐리어.    



몇십 분을 잡혀있다가 내일 꼭 오겠다는 100%의 거짓말과 한 친구의 도움으로 겨우 탈출했다. 우리에게 귓속말로 여기 말고 다른 해변으로 가라고 말해준 제임스. 마리오와 그의 친구들이 장악하고 있는 Public Beach는 도저히 걸을 수 있는 기분이 아니어서 다시 툭툭을 타고 제임스가 알려준 Nyali Beach로 갔다. Nyali Beach는 Public Beach와는 다르게 사람도 없고 매우 평화로웠다. 맨발로 백사장을 걸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던 중, 아침부터 꿀꿀하던 하늘은 결국 비를 쏟아냈다. 다행히 주변에 원두막 같이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이 있어 들어갔다. 5명의 흑오빠들도 비를 피하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그중에서 가장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흑오빠는 우리에게 윽, 그 아까 마리오가 보여준 것과 똑같은 나무 열쇠고리를 팔려고 했다. 분명 멋진 열쇠고린데 이제 보기만 해도 한숨이 나와.. 적당히 대답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비가 그쳐서 빨리 안녕을 하고 나왔다. 그 무리 중 선한 웃음을 지어주던 흑오빠 한 명이 따라나와 길을 알려주었다. 그의 이름은 데니스. 어딜 가든 핑크빛 잇몸 미소를 지어주는 친절한 친구가 한 명씩은 항상 있는 게 정말 신기했다. 그리고 참 다행이었다. 

고마워요 Asante Sana 마론, 제임스, 데니스~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예쁜 거리였다. 어제, 아니 오늘 새벽에 걸었던 거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ㅎㅎ 너무 많은 일이 있었던 하루라 저녁 5시에 그냥 잠들어버렸다. 매우 열심히 몸을 움직였지만 막상 기대했던 몸바사의 예쁜 해변에서는 피곤해 비실비실댔던 몸바사에서의 첫날은 이렇게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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