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여행 일기] Day 9. 2박 3일 응고롱고로-세렝게티 이튿날
저는 한 달 동안 케냐 - 탄자니아 - 말라위 - 잠비아 - 보츠와나 - 짐바브웨 - 남아공을 '자유여행(케냐, 짐바브웨, 남아공) + 트럭킹(*Southern Discoverer)'으로 다녀왔습니다.
*This trip begins in Nairobi, Kenya and travels south through Tanzania, Malawi, Zambia and Botswana, before ending in Victoria Falls, Zimbabwe.
관련 글 : 나의 청산, 푸른 아프리카
관련 매거진 : [푸른 아프리카]
[이전 글] Day 8. 입김이 호호 나왔던 밤 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
매우 추운 밤이었지만 살아남아서 ^^ 드디어 응고롱고로 분화구와 세렝게티를 가는 날을 맞이하였다! 매우 기분 좋게 상쾌한 아침을 맞았을 것 같지만 사실 늦잠을 자서 아침도 제대로 못 먹고 허둥지둥 지프차에 탑승했다.
응고롱고로 분화구
Ngorongoro, "Gift of Life" in Maasai language, Maa
응고롱고로 분화구에 먼저 갔다. 말 그대로 옴팡하게 파인 분화구인 응고롱고로는 세렝게티만큼 잘 알려져 있는 곳은 아니지만 물이 고인 곳이 많기 때문에 많은 동식물이 사는 곳이다. 또 세렝게티보다는 좁아서 동물들을 보기에도 더 좋다고 했다.
분화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높은 분화구 가장자리 부분을 넘어가야 한다. 크고 무성한 나무숲을 지나게 되는데 새벽에 출발해서 그런지 안개가 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안개 덕분에 오히려 훨씬 더 신비롭게 느껴지고, 분화구 안에 들어가서 보면 하얀 무언가가 분화구 가장자리를 넘어오는 장관을 볼 수 있다. 아침엔 안개인 줄 알았는데(왼쪽) 점심 때(오른쪽)도 볼 수 있었던 걸 보면 고원지대라 구름이 넘어오는 것 같다.
사파리의 시작
분화구 안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건 광활한 평지에 갖가지 동물들 뿐. 누, 얼룩말, 버펄로, 임팔라 등등 너무나도 평화롭고 태연하게 풀을 뜯고 있었다. 지붕이 열리는 사파리용 지프차에 탄 우리는 좌석을 밟고 올라가 차디찬 아침 바람을 얼굴로 맞으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나중엔 동물들을 하도 많이 봐서.. 좀 보기 어려운 동물이 나타나지 않는 한 좌석에 앉아 창문으로, 사진도 별로 찍지 않고 그냥 보았다. 분명 우리 인간들의 차가 시끄럽고 냄새도 날 텐데 동물들은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고 바로 옆까지 다가오기도 했다.
우리 가이드 겸 운전사인 애니스트를 포함해 투어용 지프차를 모는 운전사 대부분은 마사이족 출신이다. 우리가 사자가 사냥하는 모습을 보고 "Kill"이라는 단어를 썼을 때 애니스트는 동물들이 주인인 이 공간에서 그 단어를 쓰지 말라고 제지했다. 대부분 차의 속도나 소리에 놀라 동물이 도망가긴 하지만 그냥 태연하게 길을 막고 있는 경우엔 차가 최대한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피해 간다.
꽤나 오래전엔 무분별한 사냥을 해서 멸종위기에 처하게 만들었지만, 지금은 그래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어느 정도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여서 이런 접근이 가능한 게 아닐까. 물론 이렇게 보호구역으로 지정해서 관광상품으로 개발하는 것이 수익 측면에서 더 좋다느니 하는 자본주의의 잣대를 들이댈 수도 있겠지만, 동물들의 삶을 방해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우리의 모습, 그들이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자신들의 모습 자체가 인상 깊었다.
운수 좋은 날. 눈 앞에서 사자가 누를 사냥한 날
얼룩말이나 누, 가젤처럼 쉽게 볼 수 있는 동물들이 있는 반면, 소위 Big5라고 불리는 코끼리, 버펄로, 코뿔소, 사자, 표범처럼 찾아다녀도 보기 힘든 친구들도 있다. 그 넓은 곳을 하염없이 달리며 찾을 수는 없기 때문에, 운이 좋게 이런 친구들을 발견한 운전사들은 무전기를 통해 어느 곳에 어떤 동물이 있는지 서로에게 알려준다. 우리 차도 사자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갔을 때는 이미 많은 차들이 와있었다. 넓디넓은 초원에 교통체증이 발생...
우리의 능력 있고 친절한 운전사 애니스트는 우리가 사자를 좀 더 잘 볼 수 있도록 이리저리 차 사이를 파고들었고 우리 차는 어느 암사자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10여 분이 지났을까? 우리 바로 옆에 있던 암사자가 쏜살같이 우리 차 앞을 지나서 반대쪽에 있던 누를 사냥했다! 가만히 앉아있던 암사자가 갑자기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는 장면부터 누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결국은 쓰러뜨리는 장면까지, 정말 코 앞에서 볼 수 있었다. 참고로 사자들의 협업 능력은 최고.
나중에 알고 보니 애니스트가 암사자의 자세를 보고 곧 사냥할 것이란 걸 예측해 그 명당 중 명당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애니스트도 응고롱고로에서 사자가 사냥하는 모습을 본 것은 3개월 만이라고 했다. 애니스트의 예측력과 운이 합쳐져 우리 차 멤버들은 캠핑장으로 돌아와 두고두고 자랑할 만한 멋진 장면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점심은 하마 콧구멍을 보면서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고 우리는 아침에 배분받은 런치박스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우리가 점심을 먹을 곳은 잔디밭. 그런데 평범한 잔디밭이 아닌, 응고롱고로 분화구 안에 있는 잔디밭. 응고롱고로 분화구 안에 있는 맑고 커다란 호수 옆에 있는 잔디밭. 응고롱고로 분화구 안에 있는 맑고 커다란 호수 안에 있는 하마가 콧구멍을 내미는 걸 볼 수 있는 잔디밭이었다. 두더지 게임 마냥 중간중간 숨을 쉬려 콧구멍을 내미는 하마. 귀여워 ><
잔디밭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 내내 이쁜 색색깔의 새들이 다가와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다. 빵 부스러기라도 주고 싶지만 Don't Feed Animals, 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표지판이 눈에 밟혀 애써 그 눈망울을 외면했다. 하지만, 일행 중 한 명이 닭다리를 먹다가 씹는 동안 잠깐 손에 들고 있을 때, 독수리가 아주 호전적으로 날아들어 그 닭다리를 채갔다. 날개를 활짝 핀 채로 가까이 다가오니 정말 거대하고 위협적이었다. 익룡인 줄.. 겨우 한입 먹은 닭다리를 빼앗긴 그 친구의 허망한 표정보다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사람들 사이를 겁 없이 날아들어 일용할 양식을 구해간 독수리의 용맹함이 더 인상 깊었다. 언제 닭다리를 독수리한테 빼앗겨 보겠어. 이 또한 좋은 경험이 될 것이야. 뭐 어쨌든 의도치 않게 동물에게 먹이를 주게 된 우리 ㅎㅎ
이런 아름다운 곳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는 자체 만으로도 너무 벅차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아프리카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 중 하나!
세렝게티
Serengeti, "Endless Plains" in Massai language, Maa
응고롱고로 분화구를 떠나 드디어 세렝게티에 입성했다. 확실히 응고롱고로에 비해 건조해 큰 나무는 거의 없고 말 그대로 그냥 끝없는 평원이었다.
조심성이 많아 Big5 중에서도 가장 보기 힘들다는 표범. 하지만 운이 좋아도 억수로 좋았던 우리는 표범도 세렝게티에 들어서자마자 거의 바로 보았다. 사람들이 모여들자 위협을 느낀 모양인지 어미 표범이 아기 표범들을 데리고 이사를 하고 있었다. 모든 아기 동물들은 귀엽다지만, 깡총깡총 엄마를 향해 뛰어가는 아기 표범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귀엽다. 이사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하지만 너희는 너무 귀여워...ㅠㅠ
사진으로는 귀여움을 다 담을 수 없어서 짧은 영상이나마 가져와 보았다.
울타리 없는 캠핑장 (부제 : 텐트 사이)
세렝게티 캠핑장은 세렝게티 초원 한 가운데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에 건물이 딱 두개 있다. 하나는 식당, 하나는 화장실 겸 샤워실. 우리는 그 근처 양지바른 곳에다가 각자의 텐트를 세웠다. 울타리라고는 10cm도 안 되는 높이의 돌담..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마치 이웃 밭과 우리 밭을 구분하기 위해 쭉 깔아 놓은 돌처럼 되어 있을 뿐. 초원에 방목된 우리들. 가이드 크리스는 주의사항을 말해주었다.
보다시피 울타리는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 동물들이 텐트 주위를 배회할 테니 특히 밤에는 절대 텐트 밖으로 나오지 마라. 화장실이 가고 싶어도 그냥 참아라. 우리 가이드들도 밤에는 절대 나오지 않는다. 정말 미친 듯이 화장실이 가고 싶다면 랜턴으로 최소 3분 간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지 살핀 후, 짝을 지어 화장실을 가라. 하지만 그냥 화장실을 가지 말도록 해라.
좀 길었지만 어쨌든 결론은, "밤에는 텐트에 콕 박혀있어라". 괜스레 걱정이 된 나는 저녁때 나온 스포도 안 먹었다..ㅎㅎ
세렝게티 샤워실에는 당연히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았다. 오들오들 떨면서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벌써 깜깜해져 서둘러 텐트로 들어갔다. 평소엔 밤늦게까지 불 옆에 모여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지만 오늘은 모두 착한 아이들이 되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침낭에 누워 잠을 청하는데 무언가가 텐트를 툭툭 치기 시작했다. 침낭이 텐트 벽에 붙어있다 보니 텐트 밖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느낌이 직접적으로 전해져 왔는데 툭툭 치다가 발톱 같은 걸로 할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바분? 하이에나? 뭔지는 모르겠지만 텐트를 열고 무엇인지 확인할 용기는 없었다. 동물들이 캠핑장을 온다고 가이드 크리스가 얘기하긴 했지만 내가 이렇게 오감으로 느끼게 될 줄이야.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계속 내 쪽만 건드렸다. 같은 텐트임에도 Sabine 침낭이 있는 쪽은 평화로웠다. Sabine이 너는 벌레도 꼬이던데 동물도 꼬인다고.. 인기 많다고.. 뭔가 한국어로 번역하니 비꼬는 어투인 듯 하지만 원래 Sabine은 Attract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매혹시키다 뭐 이런 의미.. 굉장히 Sweet한 느낌으로 말해줬어요.. 잠도 별로 안 오고 해서 장난으로 나도 텐트를 툭툭 치니 그 반대쪽에도 툭툭. 마치 미지의 생명체와 교감을 하는 듯한 설렘을 느끼며 한동안 그 무언가와 장난을 치다가 잠을 이룰 수 없...을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편하게 잘 잤다. 텐트 너머 친구도 굿나잇 했겠지~ㅎㅎ 잘 자요
내일도 세렝게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