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여행 일기] Day 12.
저는 한 달 동안 케냐 - 탄자니아 - 말라위 - 잠비아 - 보츠와나 - 짐바브웨 - 남아공을 '자유여행(케냐, 짐바브웨, 남아공) + 트럭킹(*Southern Discoverer)'으로 다녀왔습니다.
*This trip begins in Nairobi, Kenya and travels south through Tanzania, Malawi, Zambia and Botswana, before ending in Victoria Falls, Zimbabwe.
관련 글 : 「나의 청산, 푸른 아프리카」, 「Day1,2. 드디어 여행의 시작」
관련 매거진 : [푸른 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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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1. Bush Toilet? in Africa
트럭을 타는 건.. 궁시렁
다르에스살람 가는 길. 어제저녁, 크리스는 다르에스살람의 교통체증은 그야말로 엄청나기 때문에 새벽에 출발하지 않으면 말 그대로 도로에 갇힐 것이라고 겁을 줬다. 지금도 충분히 트럭 오래 타고 있는 것 같은데?라고 툴툴대자 크리스는 도로에 갇힌 다는 건 점심시간이 돼도 길가 공터에 차를 세우고 점심을 만들 수도 없고, 화장실은커녕 Bush Toilet(*Bush Toilet? in Africa)도 갈 수 없다는 의미라고 대답했다.
트럭을 오래 타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심신을 지치게 만드는 일이다. 에어컨은 물론 널따란 유리창에 내리쬐는 햇빛을 막아 줄 커튼 하나 없다. 카드게임을 하는 친구들도 있고 책을 읽는 친구들도 있지만 뭘 하든 시간이 잘 안 간다. 트럭이 스쳐가는 아프리카 풍경이 멋있지 않을까. 멋있다. 충분히 멋있다. 정말 끝없는 평원이나, 낮은 흙담 집들이나, 수많은 소들 그리고 수많은 소똥ㅎ 모두 다 멋있고 흥미롭지만 하루에 7-8시간씩 트럭을 타고 가다 보면 그 흥미는 오래가지 못한다. 충분히 멋있지만 7시간 동안 볼 만큼 격하게 멋있지는 않다.
그리고 아무리 다리를 꼬고, 무릎을 구부리고, 옆으로 몸을 틀고 등받이에 기댄다고 해도 가로세로 50센티미터 남짓한 좌석에서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한계가 있다.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저리고, 하다못해 발가락도 불편한 것 같다. 중간중간 트럭에서 내려 스트레칭을 하면 여기저기서 우두둑 우두둑.. 뜬금없이 쓰게 된 트럭킹 투덜투덜... 하지만 트럭의 흔들림은 종종 아프리카 감성을 일깨우기도 한다. 또 급하게 해피엔딩 (*흔들림을 기록해 설렘을 남긴다)
어제 이야기한 대로 오늘 새벽 5시 반에 출발했다. 아침은 거의 4시 반쯤.. 먹었다고 하는데 나는 잠이 너무 고파 그냥 아침을 먹지 않고 쭉 잤다. 다르에스살람 시내로 들어가면 점심을 따로 만들어 먹을 상황이 되지 않기 때문에 아침에 점심 샌드위치를 싸야 했다. 나는 이것도 귀찮아서 그냥 바나나 3개를 챙겼다. 거의 삶이 귀찮았던 시점이었나 봄. 사실 그래도 먹을 게 이것저것 많이 남아있어서 크게 걱정이 되진 않았다. 투어 첫날 샀던 오렌지나 케냐 항공에서 받은 견과류, 세렝게티 초원에서 먹은 런치 박스에서 남겨둔 비스킷과 초코바 등등. 트럭을 타고 다니면 그다지 배고픈 생각이 들지도 않고 날이 더워 입맛도 돌지 않기 때문에 간식거리를 사놓아도 잘 안 먹게 된다.
지금 우린 도로에 갇힌 건가
크리스가 예고했던 대로 다르에스살람의 도로는 정말 그냥 주차장이었다. 우리나라 명절 때 귀경길 마냥 우리 트럭 앞에 있는 차도, 뒤에 있는 차도, 우리 트럭도 움직이지 못했다. 어차피 나는 운전면허도 없지만 있다 하더라도 이런 도로를 내가 운전해서 달리려면 운전경력 10년 아니... 그냥 현지의 거친 언어들을 배워와야 할 것 같았다. 분명 삼거리든 사거리든 도로의 수는 한정적일 텐데 차 앞머리의 각도들은 모두 제각각인지 모르겠다.
차가 너무 막히다 보니 차의 뜨거운 매연이 심해 트럭이 조금이라도 도로가 한산 해지는 길목에 들어섰을 때만 창을 열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러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막힌 도로 사진은 없고 맑은 파란 하늘과 쾌적하고 한산해 보이는 도로 사진만...
다르에스살람은 탄자니아의 옛 수도이자 중요한 아프리카 횡단 교통로다. 교통체증이 정말 유난히 심하다는 걸 빼면 지금까지 지나쳤던 어떤 곳보다 잘 발달된 도시인 듯하다. 국립박물관이나 성당 등 관광명소가 있긴 하지만 트럭킹 여행객들은 며칠 머무르며 둘러보기보다는 잔지바르로 가기 위해 거쳐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첫 바다수영은 인도양에서!
트럭을 탄지 한 12시간이 지났을까. 드디어 오늘 밤 몸을 뉘일 곳에 도착했다. 오늘의 캠핑사이트는 바다에서 10m 남짓 떨어진 해변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루 종일 트럭을 타느라 땀이 나 온몸이 찐득거렸던 우리는 평소와는 다르게 샤워실로 직행하지 않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사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바다'에서 수영해봤다. 생전 처음 바다수영을 해보는 곳이 아프리카 해변, 인도양이라니!! 다행히 파도가 세지는 않아서 초등학교 때 꼬물꼬물 배운 수영 스킬로도 충분히 괜찮은 척 바닷물에 몸을 담글 수 있었다. 다만 너무 물이 짜서 신기하고 힘들었다.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마쳤으니 바닷물이 짜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이걸 미각 아니 통각으로 느끼는 기분은 굉장히 새로웠다. 딱히 뭘 하지 않아도 둥둥 뜰 수 있다는 건 좋았지만 잘못해서 코로 바닷물을 먹게 되면 세상에. 이렇게나 아플 수가 없다. 이렇게 조금만 코로 물이 들어가도 아픈데 매년 사람들은 이 아픔을 감수하고 그렇게 동해바다로 피서를 떠나는 걸까. 지형적, 기후적 영향으로 이 바다의 염도가 유난히 높은 걸까. 지금 이 일기를 쓰는데도 나도 모르게 그때의 아픔이 생각나 코를 찡긋하게 될 정도로 그 아픔은 엄청났다.
손가락이 쪼글쪼글해질 무렵 바로 옆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 세명이 말을 걸었다. 시작은 언제나처럼 Where are you from? 현지 아이들이 분명한데 한국 드라마도 알고, 애국가도 알고, 태권도 유단자라고 한다. 이런 게 세계화라는 거구나? 같이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내 카메라는 방수 카메라가 아니라 물놀이할 때는 텐트 안에 고이 모셔두기 때문에...ㅎㅎ 이름이라도 일기에 써놔서 기억하기로 했다. 안드레아, 아마데우스, 바키리. 애국가를 스웩있게 부르던 친구들.
실컷 수영을 하고 평화로운 우리의 캠핑 사이트로 돌아왔다. 내일은 드디어 잔지바르를 간다. 배를 타고 잔지바르섬으로 들어가는데 텐트나 무거운 짐은 트럭에 넣고 여기 두고 간다. 세렝게티에서처럼 가벼운 3일 치 정도의 짐만 가지고 간다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짐을 챙기려 하는데.. 크리스가 잔지바르엔 비닐봉지 반입이 안된다는 뜬금없는 말을 했다. 음? 그럼 빨랫감은 물론, 축축한 세면도구, 부서진 모기향, 즙이 나오는 오렌지는 어디다가 담아가야 한다는 거지? 섬의 환경을 위해 모든 종류의 비닐봉지를 제한한다고 했다. 입국심사 때 가방을 열고 확인한다는데. 솔직히 설마 이걸 하나하나 확인하겠어? 싶긴 했지만 나는 또 소시민이라 궁시렁대면서도 비닐봉지와 지퍼백에 들어있던 갖가지 축축하고 부서지고, 난감한 것들을 종이봉투ㅋ와 천주머니ㅋ에 옮겨 담았다. Plastic Bag은 정말 문명의 이기였음을 새삼 느꼈다. 난감해 난감해. 축축해 축축해
원래 다음날 일기지만 이건.. 앞 내용과 꼭 함께 읽으셨으면 해서 이어서 쓴다.
조그마한 배낭을 메고 잔지바르로 가는 배에 올랐다. 한번 배를 갈아타고 마침내 잔지바르에 내려 다소 복잡한 선착장을 지나 입국심사를 하는 곳으로 갔다. 1964년 탕가니카와 잔지바르섬이 합쳐져 탄자니아가 되었지만 잔지바르는 여전히 자치령을 유지하고 있어 따로 입국심사를 받아야 한다. 입국심사를 하는데 어디서도 우리의 가방을 열고 짐 사이에서 비닐봉지 한 조각을 하나하나 꼼꼼하고 세심하고 야무지게 찾아낼 만한 분이 보이지 않았다. "거봐 뭐랬어"하려는 순간, 한 2명이 앉아서 공부할만한 크기의 탁자 위에 여행객의 가방을 올려놓고 그 안을 보는 듯한 분이 앞에 딱 계셨다. 우리가 방향을 틀지 않는 한 그분 앞을 반드시 지나게 될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 30도 정도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걸어나왔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낚시꾼이 모든 물고기를 낚을 수 없듯이 공권력도 그 틈새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뭐 그냥.. 낚시꾼의 생계를 걱정해야 할 것 같은 구멍 숭숭 그물이었다. '벌어져 난 틈의 사이'를 틈새라고 한다는데 이건 벌어져서 난 것이라 하기엔 너무 커서 민망하다.
그리고 입국심사장을 벗어나 사람 냄새가 나는 길로 들어서자마자 도로 양옆 풀숲에서는 하양 검정 비닐봉지들이 하늘하늘 우리를 반겼다. 잔지바르의 환경을 위해서 비닐봉지를 가져오지 말라고 했었는데. 잔지바르의 환경을 위해서는 얼른 저 검고 흰 것들을 치우는 것이 더 시급할 것 같았다. 물론 우리도 가져가지 말아야겠지만, 여태껏 잘 쓰던, 그리고 잔지바르 일정 이후로도 잘 쓸 예정이었던 각종 지퍼백들은 가지고 들어갔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과 아쉬움과 아쉬움 같은 단어를 3번 반복해서 쓰면 조금 화나 보이지 않을까 이 남았다. 혹시 크리스가 우리가 미워서 괜히 한말은 아닐렁가!? 아무튼 이렇게 비닐봉지 없는 eco-friendly 한 배낭을 메고 동아프리카 최고의 휴양지 중 하나라는 잔지바르에 입성!
야호 이제 잔지바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