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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 삶은 순환하는 거야

생명의 순환을 의미하는 리스 만들기 

설렘 

식물을 사러가는 길은 설렌다. 고속터미널 화훼시장에 가는 전날 밤, 아침 7시까지 시장에 도착하기 위해 일찍부터 잠자리에 들었지만 한참을 자다 눈을 떠보면 새벽 1시, 그다음에는 1시 55분, 그다음에는 3시 30분이다. 담담하게 잠자리에 들었지만 사실 내 마음은 소풍 가기 전날의 아이처럼 들떠있었나 보다.


오랜만에 이른 새벽에 버스정류소에 도착. 버스에 타보니 그 안은 이미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로 제법 차 있었다.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서, 부지런하게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는 얼마나 사소한 것들로 고민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지. 세상 밖은 이토록 생명력이 넘치는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연륜과 멋짐이 느껴지는 새벽의 화훼시장

3층 생화 시장에 가까워지면 그 입구에 도착하기 전부터 진한 꽃향기를 맡을 수 있다. 3층 계단 아래로 흘러 내려오는 그 향기로 '아! 저기가 바로 시장이구나!'하고 알아챌 수 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른 시간부터 분주히 꽃을 찾고, 꽃을 파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른 아침부터 이런 열기를 느낄 수 있다니! 


이 곳에 온 사람들은 다들 어떤 이유로 꽃을 사러 왔을까? 상상해보게 된다. 나는 가을부터 겨울까지 진행된 숲 정원 워크숍을 마지막 수업을 리스 만들기로 정해 놓았기에 리스 재료를 사러 갔다. 


식물의 이름을 몰라도, 눈에 보이는 형태와 색감만으로도 필요한 식물을 살 수 있기에 재료를 구입하는 일은 어렵지가 않다. 필요한 재료를 신중하지만 빠르게 고르면, 베테랑인 점포 여사장님께서 직원분과 함께 한 켠에 착착 쌓아서 들고 가기 좋게 포장을 준비하신다. 그 프로페셔널한 모습에서 연륜과 멋짐이 느껴진다. 

리스, 삶은 순환하는 거야

나에게 리스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체감하게 해 준 사람은 한 가든 스타일리스트 선생님이다. 우리의 인연은 아주 우연이었다. 귀농귀촌 생황을 정리하고 서울에 올라온 나는 도자기 가게에서 잠시 일손을 보태고 있었는데, 어느 날은 가게에 틀어놓았던 일본 음악을 좋아한다던 한 손님과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짧은 대화를 통해 그분도 나도 식물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 번의 만남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인연이 정원박람회장에서 다시 마주치게 되면서 이어졌고, 또 다른 정원 모임에서도 뵐 수 있게 되었다.


당시의 나는 일단 몸의 건강을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였다. 하지만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고립된 섬과 같은 무덤에서 홀로 긴 겨울을 맞이한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우연한 기회에 손금을 봐준 분께서도 내 손금에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하시니, 겨울철 풀처럼 땅에 바짝 엎드려 기약 없는 긴 시간을 버티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2018년 1월,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던 건강도 차츰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사를 축하하며 지인들과 입춘 모임을 하던 날, 가든 스타일리스트 선생님이 직접 만든 리스를 들고 축하 방문을 해주셨다. 일이 있으시다며 리스만 전해주고 급히 떠나셨지만, 그 리스가 가져다주는 여운은 집 안에서 그리고 내 마음 속에서 오래 오래 퍼져나갔다.


리스는 죽음과 탄생이 원처럼 이어지는 삶의 순환을 의미한다고 한다. 지금은 리스가 겨울철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일반적인 장식물이 되었지만, 한 때는 장례식장의 장식품이었다고 한다. 

무엇이 죽었고, 무엇이 다시 시작될까

       

삶을 살다 보면 느닷없는 끝을 맞이할 때가 있다. 갑작스러운 마무리, 헤어짐에 황당하며 지내고 있다 보면 예기치 못한 어느 날인가에는 새로운 시작이 펼쳐진다. 모든 시작과 끝의 이유를 다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순환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마치 자석처럼, 마차처럼 나를 끌고 나가는 삶의 생명력에 그저 따라가 보는 수밖에. 


올해 가을, 겨울 진행해왔던 워크숍의 마지막이 리스 만들기였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분들에게 이 마지막이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하고 싶었다. 공교롭게도 마지막 워크숍 날은 내 생일이기도 했다. 생일날 리스를 만들 수 있어서, 또 그 경험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기쁜 하루였다. 


앞으로 나에게는 어떤 삶이 펼쳐질까? 

아마도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펼쳐지겠지만, 한 가지 계획이 있다면 내년에도 리스를 만들고 싶다. 여러 사람들과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가운데 놓고, 한 해동안 있었던 일들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리스에 하나씩, 하나씩 식물을 심어 나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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