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가 된 아내라는 작자

# 위아 더 아줌마! 악의는 없어요, 바쁘고 조급할 뿐

by 별솜별

아줌마라는 단어, 그저 입에 담기도 조심스러운 마음이다. 어쩌다 예상치 못하게 이 호칭으로 불릴 때 누군가는 적지 않은 상처를 받기도 하고, 누군가는 원치 않아도 매번 그렇게 불리며, 누군가는 ‘아줌마가 어때서’라며 방어를 하기도 한다. 과연 이 세상에 자발적으로 아줌마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거다. 아줌마라는 말은 왜인지 모르게 어느덧 갑자기 찾아오고 어떤 관계를 맺은 후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자연히 되고야 마는 그런 위치인 것 같다. 심지어 결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아줌마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억울한 일도 없다. 왠지 모르게 나 자신을 아줌마라고 소개하기에는 조금 초라해지는 그런 말. 서론이 길었지만 이유야 어찌 됐든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아줌마’가 되었다.


10대 20대 시절 내가 바라본 아줌마들을 기억한다. 내가 만난 그녀들 중 대부분은 일단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았다. 본인들의 의지로 듣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그때는 ‘난 저렇게 되지는 말아야지’하며 영영 아줌마 따위는 되지 않겠다 여겼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아줌마를 감히 ‘되지 않겠다’ 여긴 결연한 의지라니. 그때의 내가 사뭇 귀엽다. 지금에서야 통감하고 만, 아줌마들이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변해보겠다.(내 모습에서 발견한.. 자칭 아줌마의 핑계일지라도)


그들은 항상 바쁘고 조급하다. 그래서 아줌마에겐 말할 시간과 상대가 턱없이 부족해서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이 아줌마에게만 국한되는 일만은 아니겠지만 대체적으로 특히나 아줌마들은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하고 싶은 말은 더 많다. 그런데 현실에 놓인 것들을 처리하고 나면 하고 싶은 말을 여유 있게 할 시간이 부족하다. 게다가 이야기를 잠자코 들어줄 사람을 찾는 일도 쉽지 않다. 그러니 아줌마들은 누군가를 만나면 그저 켜켜이 쌓아둔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털어버려야 살 것 같기 때문에 미안하지만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일 뿐이다.


퇴근하고 온 남편은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들어와 집에서 지친 몸과 마음의 휴식을 원한다. 지금 당장은 대화보다는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을 것이다. 그에 비해 돌도 안된 아기를 키우는 정신없는 육아생활 중에 가장 반가운 존재는 남편뿐. 아기랑 나누는 (이젠 기계적이기 까지 한) 자동 리액션과 ‘솔’ 톤으로 같은 말만 반복하며 얼러주던 하루 일과가 마무리되어 갈 때쯤 이제 어른과의 대화가 그리운 시점이 찾아온다. 그때 때마침 귀가하는 남편의 문 여는 소리는 정말이지 너무나 반갑다. 신혼 때도 이렇게까지 반가웠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그리고 이제야 아기와의 씨름에서 조금이나마 해방될 수 있겠다는 휴식에의 갈망이 함께 샘솟는다.


하지만 남편의 피곤함도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밖에서 일하고 온 남편에 대해 절대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그것도 다 안다. 절대 모르는 게 아니다. 나조차도 퇴근 후 집에 오면 완전히 녹초이거나 산송장인 날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이해하는 바다. 하지만 남편의 지쳐 보이는 기색에도 불구하고 바로 일방적 대화(유아가 아닌 성인에게 말 걸기)를 시작한다.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그의 안부를 찬찬히 묻기 이전에 일단 내 안에 산처럼 쌓인 말들을 쏟아내고 싶다는 마음이 밀려들어 수신자 같은 건 사실 필요도 없다는 듯 오로지 발신을 기다리는 말들만이 끝없이 터져 나온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 나의 말들이 집 안에 가득 들어서고 남편의 정적에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대꾸 같은 건 없어도 괜찮아. 해주면 고맙고. 이렇게 무언가를 내뱉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해소되는 기분이야. 당신이 오늘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는 나중에 들을게, 먼저 내 얘기부터 들어줄래? 하며 사소하고 끝없는 수다가 펼쳐진다. 그라고 힘들지 않을 리 없는데 그걸 먼저 볼 수 없는 나의 상태가 조금 미안하고 눈치도 살짝 보이지만 이렇게 주구장창 계속해도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아줌마는 그렇게 몇 시간 동안 끊임없이 자기만의 이야기로 허공을 가득 메웠다. 온전히 나로만 살던, 그리고 그 이후에는 아내로 살던, 그 예전에는 없던 요즘의 내 모습 속에서 나는 이렇게 종종 아니 자주, 십수 년 전 그때 만났던 아줌마들을 본다. 아마도 아줌마들은 외롭기 때문이 아닐까. 누구라도 함께 무언가를 나눌 시간과 상대가 부족한 아줌마들은 그저 고독하고 외롭기에 악의 없이 자기만의 말들에 몰입하고 있는 건 아닐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