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도 저도 아닌 중립기어를 장착하고 도망 다니는 삶
멜로도 아닌 별로가 체질이라니 언어유희도 정도껏인데 나를 까대는 것에도 창의성을 적극 활용하는 나라는 작자의 당당한 뻔뻔함에 가끔은 웃음이 난다. 내 입에서 정말 자주 뱉는 단어 중에 하나가 바로 ‘별로’라는 말인데 이런 말을 밥 먹듯이 한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 생각해도 참 별로이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정확하게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어중간하게 상대에게 책임과 선택을 떠넘기곤 몰래 숨어 불만만 하는 그런 도구로 기능하는 ‘별로’라는 표현. 때에 따라 완곡한 부정의 의미를 내포하기도 하지만 이 말을 듣는 사람은 다소 비의욕적이고 성의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게 당연한 일이다.
내가 별로라고 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책임지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게 어떤 것이든. 나의 의견이 강하게 들어가면 나중에 혹시모를 탓으로 돌아올까봐, 그건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적당적당히 그럭저럭 알아서 결정하시라는 선택적 책임 회피의 목적이다. 그래서 이도 저도 아닌 쪽으로 스르르 스르르 끌려다니길 반복하다가 원치 않는 결론이나 결과에 맞닥드리면 실망스럽다는 듯 남탓하는 귀재로 돌변해 마음 편히 떠넘길 수 있기 때문. 내 안에 중립기어를 탑재하고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쏠리지 않도록 절제된 선택권을 갖기 위함이다, 라고 우겨보지만 실상을 알면 이토록 비겁한 속내이다.
이를 통해 얻는 것은 무책임함의 자유로움 정도인데 사실 이게 그렇게나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지는 한참 시간이 지나고 보아도 정말로 모르겠다. 실제로 나의 어떤 의견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런 가능성을 애초에 배제하고 남과는 최소한으로 엮이고 늘 가벼운 마음으로만 살고 싶은 그런 삶에 대한 동경이랄지.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홀연히 떠나고(라고 쓰고 도망다닌다 라고 읽는) 마는 그런 존재로 남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기대받고 싶지도 않고 사사로운 것에 연연하고 싶지도 않은 독립적, 개인주의적 겁쟁이로서 사는 맘 편히 인생. 그게 내가 진심으로 추구하는 인생일까 고민하게 되는 시점이다.
어쩌면 나라는 작자도 누군가의 인생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고 그런 영향을 서로 주고 받고 함께 성장하며 느끼는 보람찬 마음 같은 걸 이따금 느껴보고 싶다. 언제까지 몰라몰라병에 걸려 눈치보고 도망다니는 그런 모습이 아닌 나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