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바라는 나의 이상적 모습과 현실의 차이
MBTI 검사를 할 때마다 가장 많은 확률로 나오는 결과는 ESTP, 그다음으로는 ISTJ 이렇게 두 가지가 번갈아 나오곤 하는데 각 두 가지 요소가 양극단을 오간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내 진짜 성향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외향형과 내향형을 결정짓는 E와 I, 그리고 즉흥형과 계획형을 나누는 P형과 J형이 번갈아 나온다는 건 내가 바라는 이상과 현실적 모습이 계속 맞서 싸운다는 의미일까? 그렇다면 조금 찔리기도 하지만 재미있어진다. 나는 MBTI 전문가가 아니기에 비록 주관적이고도 단편적인 모습에서 발견한 일부분의 이야기일 뿐이니 그저 가볍게 읽어주시길 부탁드린다.
한때 나는 꽤 긴 시간 동안 나를 외향적인 사람으로 소개하며 살았다. 누구와도 쉽게 대화를 나누고 낯가림이라고는 없는 데다 처음 보는 사람과도 몇 시간씩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일이 전혀 피곤하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젊음의 패기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에너지를 충전한다고 느꼈지만 이제 그럴 수 없는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상황과 육아라는 조건이 나를 집순이로 만들었고 이 시간이 답답하거나 견딜 수 없기보다는 나 홀로 시간을 가지며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때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조용히 에너지를 충전하는 편이 나를 더 긍정적이고 활기차게 만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외출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오던 날이면 미친 듯이 하루 종일 지쳐 잠들어 정신 못 차리던 시절이 이제야 다 납득이 된다. 나는 맞지 않는 옷을 소화하려 고군분투 했던 건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서 나는 늘 활발하고 명랑한 이미지로 비추어졌지만 정작 중요한 발표 자리나 나의 의견을 제시해야 할 때는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홍당무가 되고 평소에 그렇게 잘하던 말도 앞 뒤 안 맞게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에 스스로 놀랐던 적도 있다. 말보다 글로 정리해 말하는 것이 훨씬 편했지만 이런 모습이 찌질해 보이진 않을까 혹여 들킬까 봐 안절부절이었고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빼꼼히 고개를 드는 ‘나 어쩌면 내성적인 사람인 걸까나?’라는 생각을 가진 내 모습 자체가 왠지 부끄러워 최선을 다해 아닌 척 모면하며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실제로 가지지 못함에 괜히 멋져 보이는 E형이고 싶어서 부단히 노력했던 I형의 인간이었을까!
즉흥형과 계획형에 대해서도 비슷하다. 대체적으로 모든 면에서 어떤 일을 준비할 때 계획보다는 일단 부딪혀 보자는 마인드로 임했던 나였다. 여행을 떠날 땐 늘 갑자기 결정하고 준비 없이 훌쩍 떠나기 일쑤였고 어떤 정형화된 틀에 박힌다는 이미지가 자유분방하지 않고 쿨하지 않아 보인다는 이유로 너무나도 불안한 속마음을 묵인한 채 무계획으로 떠나는 내 모습에 도취되어 스스로를 과시하던 시절이었다.
정해진 일정대로 진행하는 편이 훨씬 마음이 편했지만 그런 모습은 왠지 고리타분해 보인다는 판단에 급작스럽게 계획을 틀어 짜릿함을 즐기(는 척 하)기도 했고 그런 모습 뒤에 숨겨진 시행착오들은 뒤로한 채 어쨌든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건 정말 짜릿한 일이야! 하며 되지도 않은 대범함을 연기했다.
데드라인이 정해진 일을 처리할 때도 세부적으로 일정을 나누어 계획을 세우고 하는 편이 본래 내 성향 과 잘 맞는다는 걸, 그래야 불안함 없이 차분하고 안정적인 결과로 이어갈 힘을 얻는다는 걸 알면서도 마감 일정이 다 되어서야 벼락치기처럼 (그러면서도 완벽하게!) 클리어하는 모습에 대한 동경이 나를 아슬아슬 외줄 타기 하는 마음으로 정신 없이 일하도록 내몰았다.
진짜 내 모습을 인정하고 깨닫는 데까지 왜 이렇게 긴 시간이 걸렸는지 모를 일이다. 지난날 내가 바랐던 과거의 성향보다 원래 내가 가진 본연의 성향들이 지금은 더 마음에 들고 나답다는 사실에 한결 기분이 산뜻하다. 이토록 나를 잘 설명하는, 나의 성향을 깊이 이해하게 된 나라서 나는 내가 한층 더 좋아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