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돈 거리는 삶이여 안녕
명문대 졸업 후 대기업에 다니던 아빠 덕분에 한동안 유복하게 자랐다. 고급 승용차와 추첨으로 운영되는 사립 유치원, 연간 회원권으로 집처럼 드나들던 놀이공원, 브랜드 옷만 입고 다니던 사진 속 어린 시절의 모습이 가끔은 낯설다. 나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 하고. 대한민국이 휘청하던 IMF 때 아빠의 회사도 함께 몰락했고 젊은 나이에 실직한 아빠는 그 이후 마음 맞는 사람들과 소소하게 시작한 사업의 처참한 실패, 그리고 몇 번의 이직을 거쳤다. 아주 어렵던 시절은 나의 청소년기를 관통했고 사춘기라 불릴법한 시기는 이러한 가정 분위기 때문인지 아주 조용히 지나갔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차츰 회복을 할 정도로 내가 기억하는 유년기 우리 집의 가계경제는 늘 여유란 없던 기억이 지배적이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한시도 아르바이트를 쉰 적이 없었고, 그렇다고 학교 수업과 아르바이트가 끝난 이후 공부에 전념할 열정까진 부족했던 나는 늘 어중간한 인생을 살았다. 아르바이트를 통한 용돈벌이도 교통 통신비를 비롯해 한 달에 세네 번 적당한 유흥을 즐길 정도의 수준으로, 성적도 장학금과 학사경고 사이 그냥 평범한 어디쯤에 머물렀다. 다시 돌아간다면 좀 더 독하게 공부해서 장학금을 받는 게 더 큰돈을 세이브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들엔 후회는 없다. 그 시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체력으로 학교도 친구도 아르바이트도 연애도 챙기기 위해 하루를 쪼개고 쪼개 최선의 시간을 보냈다.
씀씀이가 클 수 없는 상황을 오래 겪다 보니 자연히 작은 돈에도 크게 연연하였다. 친구들과 술 한잔하는 즐거운 시간도 온전히 즐기지 못했고 술자리가 끝나면 나누어 낼 회비 걱정에 추가로 시키는 값싼 안주 하나에 마음이 불편한 쪼잔한 작자였다. 웃프지만 취한 와중에도 돈 계산 하나는 정확히 해내던 시절이었다. 다 같이 점심을 먹고 혹시 내 카드로 미리 결제할 때면 바로바로 입금해주지 않는 친구들을 미워하기도 했다. 친구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돈 생각만 날 정도로 머릿속에서 돈, 그놈의 돈에 대한 집착이 떠나질 않았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돈을 대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여유로워질까? 고민만 하다가 대학을 졸업했고 사회 초년생이 되었지만 박봉의 직업을 선택한 나라는 작자에게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삶은 한동안 쉬이 찾아오지 않았다.
스물아홉, 조금 늦었다면 늦은 나이에 유럽 워킹홀리데이 막차를 탔다. 해외 생활을 경험하면서 전보다 돈의 씀씀이가 조금씩 커졌다. 한국에서보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벌다 보니 여윳돈이 생겼고 틈만 나면 여행을 즐기고 내게 정말 필요한 영역이라면 아낌없이 지출하는 용기도 얻었다. 서른 줄에 들고 나서야 처음으로 돈이라는 좁은 세상을 벗어나 자유로워진 기분을 느꼈다. 돈, 있으면 고맙고 없으면 아끼면 된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도 이 시기를 통해 배웠다. 내 손안에 든 것이 꼭 큰돈이 아니어도 소소하게 절약해 모으면 작은 돈도 언젠가 힘이 생긴다는 믿음까지 굉장히 많은 교훈을 얻은 시간들이었다.
돈의 많고 적음은 상대적인 의미이며 있는 선에서 감사하고 나름대로 만족하는 인생을 일구는 방향성도 점차 확립해갔다. 그동안 나의 가난을 누구 때문이라 여기고 탓한 시간이 아까웠다. 오래전부터 나는 돈이라는 감옥에서 해방할 수 있는 기회가 무수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유명 소설가의 비유처럼 스스로 (돈이라는) 감옥에 들어가 열쇠를 밖으로 내던진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영문법과 해석의 파괴, 한글의 언어유희로 버무린 이번 글의 제목처럼 나는 사사로운 돈 걱정들로 아무도 금지하지 않은 행복을 스스로 막았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돈돈 거리고 싶지 않은 나라는 작자도 이제는 안다. 살아가면서 돈이 굉장히 중요한 자원 혹은 능력으로 여겨질 때도 수없이 많지만 돈을 뛰어넘는 가치는 내가 돈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방식으로 돈 자체를 목적이 아닌 도구로 사용하는지를 제대로 알 때 그제야 진정 돈이라는 존재가 부차적으로 내 삶에 도움을 줄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 이제 다 함께 돈(Dont’) 돈 거리고 걱정 없이 행복해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