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아라 Oct 01. 2015

나 이제 여왕 안 할래!

크리스티나의 퇴위

크리스티나는 어린 시절부터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성장하게 됩니다. 그녀의 어머니인 마리아 엘레오노라는 딸을 매우 미워했으며 남편인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죽은 뒤에는 사랑하는 남편의 죽음은 마리아 엘레오노라의 우울증을 더  극대화시키게 되죠. 왕비는 어두운 방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았으며 어린 딸을 자신에게서 떼어놓는 것조차도 거부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어린 크리스티나에게 스스로도 여성이었으면서 여성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갖게 됩니다.


크리스티나 여왕, 16살


이후 국왕이 된 뒤에는 크리스티나는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에 더욱더 불만을 갖게 됩니다. 당대에는 여성이 남성만큼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그다지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었죠. 게다가 어린 크리스티나를 교육하던 인물 대부분은 남성들이었으며 이런 상황은 당대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했을 것입니다. 또 정치적 상황 역시 크리스티나가 스스로가 여성인 점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갖게 했을 것입니다.


크리스티나는 어려서부터 똑똑했으며 심지어 데카르트를 초빙해서 공부를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어린 여왕을 대신해서 국정을 운영하던 귀족들은 귀족들에게 유리하게 운영을 했으며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왕권이 약화됩니다. 게다가 여왕인 크리스티나에게 "국왕"으로써의 행동보다는 "후계자를 낳는 의무"를 수행하는 것을 우선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크리스티나와 데카르트


이런 상황은 크리스티나가 친정을 시작한 후 정치에 좌절하는 계기가 되었을듯합니다. 그녀는 귀족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나름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죠. 그리고 이런 상황은 그녀가 자신이 여성이기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듯합니다. 아마도 이런 여왕의 생각이 잘 드러난 것이 바로 여왕의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여왕은 남자의 옷을 입고 있었으며 다른 여성들처럼 몸단장을 하는데 시간을 쓰지 않았었습니다. 심지어 그녀는 잉글랜드의 사절 앞에서도 남성용 옷을 입고 나타나서 잉글랜드 사절들을 경악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신하들은 계속해서 여왕이 결혼해서 후계자를 낳길 바랬습니다만 여왕은 결혼을 거부하죠. 아마도 자신의 여성성에 대한 거부감이 이런 결혼 거부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합니다. 


결국 크리스티나 여왕은 학문과 예술에 더 심취했는데 후에 그녀는 에피쿠로스 학파에 심취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여왕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정치 대신  자신의 행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으며, 결국 퇴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여왕은 자신이 어떻게 왕위에서 물러날 수 있을지 잘 알았을 것입니다. 신교도만이 스웨덴의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었기에 그녀는 자신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면 왕위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퇴위합니다. 서양에서 퇴위는 사실상 굉장히 무책임한 일중 하나입니다. 국왕의 의무는 하느님에게서 받는 것이며 이런 퇴위야 말로 자신의 의무를 버리는 것이었죠. 


크리스티나는 그래도 자신의 의무를 완전히 잊지 않았는데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시점에서 그녀는 사촌이자 어린 시절부터 잘 알고 지냈던 사촌인 팔츠-츠바이브뤽켄-크리부르크의 칼 구스타프를 왕위 계승자로 지정했었죠. 칼 구스타프의 어머니는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가장 신뢰한 누나이자 딸의 양육을 부탁했다고 알려진 카타리나였습니다.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었는데 여성의 왕위 계승권을 인정한 스웨덴이었기에 어머니의 권리로 칼 구스타프가 왕위 계승권을 이어받을 수 있었죠.


1654년 크리스티나는 사촌인 칼 구스타프에게 왕위를 물려줍니다. 그리고 로마로 떠나죠.


크리스티나 여왕


더하기

가톨릭에 대한 호의만이 그녀의 개종 목적이 아니었다는 것은 명백한데, 왜냐면 그녀는 종교에 심취했다고 말하기에는 가톨릭 종교의식에 대해서 너무 무지했으며 또 존경하지도 않았죠.  크리스티나는 신교에서 구교로 개종한 가장 높은 신분의 여성이었기에 로마나 다른 가톨릭 국가들에 호의를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기이한 행동들에 많은 이들이 놀랐다고 합니다. 

사촌인 칼 구스타프가 사망한 뒤 크리스티나는 다시 스웨덴으로 돌아가 자신이 국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자신은 사촌에게 양위한 것일 뿐 다른 이가 국왕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죠. 물론 스웨덴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파리를 방문하는 크리스티나 여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