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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Sep 30. 2015

"저분이 우리 여왕이시오"

크리스티나 여왕의 즉위

1632년 봄과 겨울 두 명의 스웨덴 국왕이 사망합니다. 1632년 봄에는 스웨덴의 국왕이었으며 숙부인 칼에게 스웨덴 왕위를 뺏긴 폴란드의 지그문트 3세가 사망했죠. 그리고 1632년 11월에는 스웨덴의 가장 위대한 국왕인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뤼첸 전투에서 전사합니다.


뤼첸전투, 비록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전사했지만 전투 자체는 승리를 거둬서 크리스티나가 훗날 아버지에 대해서 "영광에 휩쌓여돌아가셨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구스타프 2세 아돌프와 스웨덴은 오래도록 사방의 적들과 싸워왔습니다. 덴마크와 노르웨이, 폴란드 등 스웨덴은 적국으로 둘러싸여있었으며 복잡한 정치사정은 늘 스웨덴을 전쟁으로 끌여들이고 있었습니다. 뛰어난 군주이자 뛰어난 군인이었던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귀족들을 통합해서 내정을 안정시켰으며 과감한 전투로 외적들과의 전투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두던 인물이었습니다.


30년 전쟁이 확대되면서 스웨덴은 다시 한번 불안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리고 국왕과 스웨덴 의회는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라는 결정을 내리고 30년 전쟁에 뛰어들게 됩니다. 이때 구스타프 2세 아돌프에게는 남성후계자가 없었고 유일한 딸인 크리스티나 밖에 없었죠.  독일로 가기 전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딸인 크리스티나를 후계자로 승인하게 됩니다.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전사했을 때 크리스티나는 고작 만으로 여섯 살이 안된 나이였습니다. 스웨덴의 귀족들은 다시 한번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라를 통합했던 국왕은 전사했으며 그의 후계자는 고작 다섯살 난 딸밖에 없었죠. 여전히 스웨덴은 전쟁 중이었는데 이런 어린 여자아이가 국왕이 되는 것은 스웨덴에게 매우 불리한 상황이기도 했었죠.


이런 틈을 노려서 한 사람이 접근하게 됩니다. 바로 폴란드의 국왕인 브와디스와프 4세였습니다. 브와디스와프 4세는 지그문트 3세의 아들로 그는 아버지가 죽은 뒤 폴란드 국왕이 되었었죠. 사실 지그문트 3세는 사촌이 딸밖에 없는 것을 알고 스웨덴 귀족들에게 접근해서 자신의 아들이 스웨덴의 국왕이 될 경우 귀족들의 권리를 보장해줄 수 있다고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아들이 가톨릭이었지만 신교에 호의적이며 스웨덴에서 신교를 보장하겠다는 약속도 했었죠. 


브와디스와프는 이미 성인으로 역시나 괜찮은 군인이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구스타프 2세 아돌프와 비교하면 안되지만 말입니다. 이런 상황은 어린 여자아이인 크리스티나보다 브와디스와프가 국왕으로 더 적당하다는 생각을 하는 귀족들을 늘어나게 했을 것입니다. 


폴란드의 브와디스와스 4세, 크리스티나의 육촌


그러나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전선으로 떠나기 전 꾸린 섭정단은 완고하게 그가 아닌 크리스티나가 여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브와디스와프는 스웨덴으로 사절을 보냈고 그 사절은 섭정단에게 "구스타푸스 아돌푸스의 딸이 어디 있소? 나는 그런 사람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소"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섭정단 중 한 명이었던 가브리엘 옥센셰르나는 어린 크리스티나를 가리키면서"저분이 바로 그분이오. 저 눈과 코와 이마는 우리 국왕의 모습이오. 저분이 바로 국왕의 딸이시고, 우리의  여왕이오."라고 이야기했다고 전해집니다.(크리스티나의 코는 바사 가문의 긴 코를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가장 믿고 의지했던 신하이자 총리였던 악셀 옥센셰나르는 구스타프 2세 아돌프의 유지를 받들어 그의 딸인 크리스티나를 여왕으로 만듭니다. 의회는 "루터파"가 아닐경우 왕위를 이을수 없다는 조건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는데, 이것은 지그문트 3세에게 그랬던 것처럼 브와디스와프의 왕위 계승을 배제하겠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었죠. 그리고 이 조항에서 "여성을 배제한다는 것이 없다"는 점을 들어 크리스티나가 스웨덴의 국왕이 되는 것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선포하죠.


악셀 옥센셰르나


이렇게 크리스티나는 만 다섯 살의 나이로 스웨덴의 여왕이 됩니다. 그리고 선왕의 신하들, 특히 군인들이 크리스티나에게 먼저 충성맹세를 했고 이런 상황은 결국 스웨덴 귀족들 전체가 크리스티나를 여왕으로 인정하게 만들었습니다.


크리스티나 여왕, 어린시절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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