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2세 아돌프의 결혼 이야기
스웨덴의 가장 위대한 국왕은 바로 구스타프 2세 아돌프입니다. 그는 뛰어난 군인이자 군주로 스웨덴에서 왕권과 귀족 권력을 조화롭게 만들었으며, 적들에 둘러싸여 고립된 스웨덴을 오직 자신과 신하들의 능력으로 적들을 물리쳤으며 30년 전쟁에 뛰어들어서 매우 성공적으로 전투 상황을 이끌어서 오래도록 스웨덴을 강대국 반열에 들어서게 했던 인물이었죠.
그의 삶은 진짜 소설에나 나오는 영웅의 삶과 비슷합니다. 아버지 칼 9세가 사망했을 때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미성년자였으며 그의 어머니가 섭정이 되었습니다. 그의 어머니인 홀슈타인-고토로프의 크리스티나 왕비는 매우 의지가 강한 여성이자 아들이 믿을 수 있는 훌륭한 섭정이었죠. 덴마크와의 전쟁 중에 아버지가 사망했고 결국 이런 상황은 전쟁을 종식시킨 조약에서 스웨덴이 덴마크에 많은 것을 내줘야 했었습니다. 하지만 구스타프 아돌프는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내정을 다졌고, 이후 수많은 외적들과의 전투에 가장 앞에서 싸우면서 스웨덴을 강한 나라로 만들어갔었죠.
구스타프 2세 아돌프의 결혼 이야기 역시 동화 속에 나오는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원래 스웨덴 귀족이었던 에바 브라헤를 사랑했었습니다. 브라헤 가문은 스웨덴에서 가장 강력한 귀족 가문 중 하나였죠. 그녀와 결혼하길 원했지만 모후였던 크리스티나 왕비가 이 결혼을 반대합니다. 그녀는 귀족 가문과 아들이 결혼할 경우 브라헤 가문이 권력을 얻게 되어서 귀족들간의 알력이 커질 것을 걱정했으며 아들이 외국 왕녀와 결혼함으로써 외적으로 둘러싸인 스웨덴에 유리한 외국 동맹세력을 얻길 바랬죠. 모후는 역시 자신처럼 강인한 성격의 아들을 설득하기 보다는 에바 브라헤를 떠나게 하는데 더 집중했습니다. 결국 에바 브라헤는 스웨덴의 유능한 장군이었던 야곱 드 라 가르디와 결혼하게 되죠.
에바 브라헤가 떠난 후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스웨덴에 도움이 될 만한 외국 왕녀들을 물색합니다. 그리고 찾아낸 여성이 브란덴부르크의 선제후의 딸이었던 마리아 엘레오노라였습니다.
사실 둘의 결혼은 그다지 성사될 것 같이 않아 보였는데,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는 호엔촐레른 가문이었으며 호엔촐레른 가문은 프로이센 공작령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프로이센 공작은 폴란드 국왕의 봉신이었죠. 당시 폴란드 국왕은 구스타프 2세 아돌프의 사촌이자 숙부에게 스웨덴 왕위를 뺏긴 지그문트 3세였고 이런 상황은 당연히 호엔촐레른 가문에서는 구스타프 2세 아돌프를 그다지 호의적으로 보지 않았었죠. 특히 프로이센 공작의 딸이었던 마리아 엘레오노라의 어머니 안나가 이 결혼에 반대했었습니다. 그나마 마리아 엘레오노라의 아버지였던 브란덴부르크의 선제후가 구스타프 2세 아돌프에게 호의적이었으며, 결혼할 당사자였던 마리아 엘레오노라 역시 다른 구혼자들보다 스웨덴의 젊은 국왕에게 좀 더 관심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혼담이 성사되기 전 마리아 엘레오노라의 아버지가 사망했고 결혼은 물 건너 간 것이라고 여겨지게 됩니다.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자신에게 호의적이었던 선제후가 죽은 뒤 베를린에 도착합니다. 이곳에서 스웨덴의 젊은 국왕은 궁정 사람들을 매혹시켰으며 여기에는 신붓감이었던 마리아 엘레오노라는 물론 그를 사윗감으로 원치 않았던 마리아 엘레오노라의 어머니인 프로이센의 안나도 포함되죠. 마리아 엘레오노라의 오빠이자 브란덴부르크의 선제후였던 게오르그 빌헬름은 이 결혼에 반대합니다. 그는 스웨덴으로 돌아간 구스타프 2세 아돌프에게 스웨덴과 폴란드의 관계 때문에 동생을 결혼시킬 수 없다고 편지를 보냅니다. 하지만 이 상황에 대해 어머니인 프로이센의 안나가 반발하죠. 안나는 아들이 딸의 결혼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딸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서 결혼협상을 진행합니다. 그리고 이런 험난한 과정을 거쳐서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브란덴부르크의 마리아 엘레오노라와 결혼하게 되죠.
하지만 둘의 결혼 생활을 동화처럼 행복하지는 않았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후계자에 대한 마리아 엘레오노라의 강박관념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마리아 엘레오노라가 딸 크리스티나와의 사이가 나빠지는데 일조하였고요.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