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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Nov 03. 2017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공작부인의 모델이 된 여인

티롤 Tyrol 지역은 현재 오스트리아 남부와 이탈리아 북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오래전부터 독일과 이탈리아를 잇는 중요한 지역 중 하나였다. 14세기 티롤 지역을 통치하던 군주였던 하인리히 Heinrich는 외동딸 마르가레테 Margarete에게 자신의 영지 모두를 상속해주기 위해 그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던 보헤미아 국왕의 아들에게 시집을 보냈다.


티롤의 마르가레테


당시 8살이었던 보헤미아 왕자 요한 하인리히 Johann Heinrich와 12살이었던 마르가레테가 결혼식을 올렸는데, 기록에 따르면 어린 부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를 무척 싫어했다고 한다. 이후 티롤 지역을 두고 복잡한 권력 투쟁이 생기면서, 마르가레테는 다른 지역들을 모두 빼앗기고 티롤만 상속받게 되었다. 그녀는 상속녀로서 자신의 통치권을 인정받기를 원했지만 그녀가 남편보다 나이가 많았으며 상속권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통치에서 소외받고 있는 것에 불만을 가졌다. 부부 사이도 매우 좋지 않았다.


요한 하인리히, 마르가레테의 남편


1341년 11월, 요한 하인리히가 사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성문이 열리지 않았다. 마르가레테가 문을 열어주지 않은 것이었다. 당황한 요한 하인리히는 인근 성으로 향했지만, 주변의 귀족들 중 누구도 그를 받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그는 티롤을 떠나 다른 지역의 대주교에게 몸을 의탁해야 했다. 남편을 쫓아낸 마르가레테는 교황에게 자신이 초야를 치르지 않았으므로 이 결혼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남편이 강력한 룩셈부르크 가문 출신으로 시아버지가 보헤미아 국왕이었으니, 마르가레테의 이혼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였다. 그녀가 남편과 헤어지기 위해서는 또 다른 강력한 세력이 필요했다. 마르가레테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가문인 비텔스바흐 가문을 선택했다. 당시 황제로 비텔스바흐 가문 출신이었던 루트비히 4세는 중요한 티롤 지역을 얻게 되기에 자신의 아들 루트비히 Ludwig와 마르가레테와의 결혼을 승인하게 된다.


마르가레테와 루트비히는 1342년 2월에 결혼했다. 이 결혼은 당시 엄청나게 큰 스캔들이었다. 아직 교황이 이혼 판결을 내리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교회법상으로 본다면, 마르가레테는 혼인 관계 중에 다른 남자와 또 결혼한 것이었다. 교황은 결국 마르가레테와 루트비히를 파문했다. 중세 시대는 가부장 중심의 문화였으며 여성의 권리는 매우 제한적이었는데, 마르가레테는 남편을 쫓아냈을 뿐 아니라 결혼이 무효가 되기도 전에 다른 남자와 결혼해버렸으니 당시 도덕적 관점으로 본다면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다.

이 갈등의 승리는 마르가레테 측이 얻었지만 티롤 지역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교황의 파문 때문에 티롤에서는 교회에서 세례나 미사 등이 금지되었는데, 신앙이 삶의 중심이었던 중세 시대에 이것은 사람들에게 큰 시련이었다. 자연재해가 일어날 때마다 모두 루트비히와 마르가레테가 지은 죄 때문이라는 비난이 생겨났다. 게다가 14세기에는 '신의 징벌'이라고 불린 흑사병이 창궐했으니, 이 또한 비난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마르가레테에게는 ‘Maultasch’라는 별명이 있었다. 커다란 입 또는 가방 입구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 단어다. 이로 인해 마르가레테가 매우 큰 입을 가진, 못생긴 여성이었을 것이라고 추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후대 저자들과는 달리, 동시대의 기록에는 마르가레테가 매우 아름다운 여성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물론 ‘커다란 입’이라는 별명이 그녀의 생김새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창녀나 부도덕한 여성을 의미하는 ‘Maultashce’의 오기라는 의견도 있다. 교회가 마르가레테의 이혼과 결혼 문제에 대해 비판적이었으므로 그녀에게 부정적 의미의 별명을 붙였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캉탱 마시의 그림, 일반적으로 <추한 공작부인The Ugly Duchess>라는 이름으로 알려짐


그런데 16세기, 플랑드르 출신의 화가 캉탱 마시 Quentin Matsys가 늙은 여인의 초상화를 그렸다. 매우 그로테스크한 이 그림은 기형적으로 큰 얼굴을 한 여성을 담고 있었다. ‘커다란 입’이라는 별명과 잘 어울렸기 때문인지 그림의 주인공이 티롤의 마르가레테라는 추정이 돌았다. 이 초상화는 점점 <추한 공작부인 The Ugly Duchess>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는데, 19세기에 한 삽화가가 이 초상화의 이미지를 쓰면서 그림이 급격한 유명세를 타게 된다. 바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삽화를 담당한 존 테니얼 John Tenniel이었다. 공작부인을 묘사한 그림이 캉탱 마시의 작품과  매우 유사했던 것이다.


<이상한나라의 앨리스>  중 공작부인에 대한 삽화


하지만 현대에 들어, 캉탱 마시가 그린 초상화의 진짜 모델은 마르가레테가 아니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가장 큰 이유는 캉탱 마시의 그림이 마르가레테가 살던 시점보다 150년 이상 지나서 그려졌다는 것이었다. 2008년에는 캉탱 마시의 그림에 나오는 인물이 골 파제트 병(뼈의 재형성이 과도하게 진행되면서 골격계가 변화하는 병으로, 두개골에 나타날 경우 두개골이 팽창되고 안면이 변형되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에 걸린 인물이라고 추정한 연구가 나오기도 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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