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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Feb 06. 2020

마지막

King 이고 싶어했던 Queen :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1668년 11월 크리스티나는 다시한번 로마로 돌아옵니다. 로마로 돌아온 뒤 크리스티나는 더이상 로마를 떠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녀는 정치적인 문제에 자주 연루되고는 했습니다. 이를테면 폴란드에서 왕위계승문제가 생기면서 크리스티나의 지위는 좀 애매해지게 됩니다. 폴란드의 바사 가문은 크리스티나와 친척관계였으며 이런 상황은 바사가문의 직계가 단절되면서 폴란드 왕위계승문제가 발생했을때, 크리스티나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만들었던듯합니다. 하지만 결국 폴란드는 폴란드인 국왕을 선출하죠.



크리스티나



크리스티나는 로마에서 많은 사람들과 교류했으며, 정치적 문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는 했었습니다. 그녀는 주로 프랑스,스페인,브란덴부르크,황제의 궁정등과 교류를 하면서 자신이 생각한 유럽 정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는 했었습니다. 또 그녀는 스웨덴과의 고리를 놓지는 않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그녀의 경제적 문제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크리스티나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을뿐만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친구들에게 아낌없이 호의를 베풀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그녀 자신은 항상 경제적 문제에 시달리도록 만들었을 것입니다. 

물론 스웨덴 궁정에서는 크리스티나의 사적 교류는 막지 않았던듯한데, 칼 11세의 아들인 칼 12세는 어린시절 크리스티나와 편지를 주고 받았다고 합니다.



칼 12세, ...그러고보니 이분도 크리스티나 만큼 특이한 인물이긴하네요.


크리스티나는 로마 사회의 중심인물중 하나였습니다. 그녀는 여러 친구들이 있었으며 교류했었으며 그 중에는 교황들도 포함되어있었습니다. 


크리스티나는 어려서부터 건강이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했으며 로마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그녀는 건강이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나이든 크리스티나는 "작고, 살이 쪘으며, 명랑한 성품에 친절한 사람"으로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녀는 평생 신랄한 독설가였으며 그것은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했었다고 합니다.



나이든 후의 크리스티나



1689년 2월 크리스티나의 건강은 매우 악화되었으며,종부성사를 받기까지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크리스티나의 건강은 서서히 회복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4월에 크리스티나는 사망합니다.

크리스티나는 죽은뒤 판테온에 묻히길 바랬습니다만, 교황은 그녀의 시신을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옮겼으며 교황들이 묻히는 묘지에 묻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녀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가장 높은 신분의 인물이었기에 이에 대한 상징성이 컸기 때문일듯합니다. 이곳에 묻힌 수많은 사람중에 여성은 세명이었는데 그중 한명이 바로 크리스티나라고 합니다.


크리스티나가 남자옷을 입고 남성들처럼 행동을 하는 등의 상황은 그녀가 동성연애자이거나 성적 혼란을 겪는 사람으로 오래도록 여겨지도록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평범한 여성으로 이성애자였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역시 많습니다. 특히 데키오 아촐리니 추기경은 크리스티나와 오래도록 친숙한 관계를 유지했었는데 그가 크리스티나의 연인이었다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추기경은 일반적으로 크리스티나의 재정문제를 담당했다고 알려져있었지만, 교황청에서는 추문을 막기 위해 그를 루마니아로 보내기도 했었으며 크리스티나가 죽기전 그녀 곁에 그가 있었고 크리스티나의 유언장에서 유일한 상속인으로 지정된 인물도 그였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은 그가 크리스티나의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했었을 것이며 아마도 그가 크리스티나의 연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하는 듯합니다.



데키오 아촐리니 추기경


크리스티나는 "조실부모"하고 군주로써 마음을 터놓을 사람없이 외롭게 성장했을 것입니다. 그것도 군인 군주가 절실히 필요했던 스웨덴 같은 나라에서 여성 군주가 되는 것은 엄청나게 힘든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아마도이런 상황은 그녀가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이 군주로써의 삶에 걸림돌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어려서부터 남성들에게 둘러쌓여서 군주로 수업받았던 크리스티나가 당대의 관념에 맞는 여성으로써의 교육을 받았다고는 보기 힘들것입니다. 결국 이런 상황은 그녀가 남자옷을 편하게 생각한다던가, 남성들처럼 행동한다던가 하는 모습을 보였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크리스티나는 정치적 안목을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그녀가 자신이 어린시절부터 나라를 통치해왔던 섭정단과 마찰을 빚었을때 그들을 꺽을만한 힘이 있었는가는 고민해봐야할 것입니다. 스웨덴에서 이런 경우 대부분은 "전쟁"을 통해서 해결했습니다. 대외전쟁을 통해서 군주의 능력을 입증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티나는 여성이었으며 그녀가 전장에 서는 것은 무리였을 것입니다. 결국 이런 상황은 그녀가 스웨덴 정치 상황을 타개해나가는데 좌절감을 느끼게 했을 것이며 결국 이런 상황은 그녀가 미련없이 왕위를 버릴수 있게 했을 것입니다.



크리스티나 


크리스티나는 위대한 국왕이었던 아버지 구스타프 2세 아돌프와 같은 별의 위치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때문에 모두가 그녀가 태어날때 위대한 국왕의 탄생을 기대했었죠. 어쩌면 그녀는 위대한 국왕이 될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크리스티나는 결국 왕위를 포기했고, 스웨덴을 떠나 로마로 갔습니다. 그녀의 행동은어쩌면 매우 무책임한 행동일 수 있습니다.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왕권을 포기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크리스티나의 이름이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후대에도 기억되는 것은 어쩌면 이런 그녀의 결단 때문이 아닐까합니다.



크리스티나의 제일 유명한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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