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생활을 위해서...영국의 캐롤라인 왕비(13)

영국에서 : 여전한 남편과 시아버지의 갈등과 그 여파

by 엘아라

영국으로 온 조지 1세와 그의 아들인 웨일스 공 조지는 매우 다른 행보를 보이게 됩니다. 조지 1세는 50살이 넘어서 영국으로 왔기에 당연히 영국 사회에 적응하는데 훨씬 소극적이었습니다. 조지 1세는 영어를 어느정도 이해하고 몇마디 쓸수도 있었다고 합니다만 언어때문에 불편한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이것은 안그래도 그리 사교적 성격이 아닌 조지 1세가 더욱더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원인이 됩니다. 게다가 그에게는 왕비가 없이 그저 정부만 있었으며 이것 역시 어느정도 장벽이 되었습니다.

반면 조지 1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웨일스 공과 그의 아내는 매우 적극적으로 영국 사람들과 친해지게 됩니다. 그들은 이미 헨리에타 하워드를 통해서 영어를 어느정도 능훅하게 익혔으며 비록 영어 쓰기는 서툴렀지만 자유롭게 말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영국 사람들과 이들이 더욱더 친하게 지내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캐롤라인은 매우 다정한 사람이었고, 웨일스 공은 매우 사교적인 사람이었기에 둘의 주변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들게 됩니다.


웨일스 공 시절의 조지 2세


이런 상황은 조지 1세와 웨일스 공과의 갈등을 더욱더 증폭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조지 1세는 여전히 아들에게 권력을 넘겨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영국에서는 하노버에서처럼 아들을 완전히 억압하고 정치에 전혀 관여할수 없도록 할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을 실질적 정치 활동에서 배제시키고 아들이 여전히 힘을 쓸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조지 1세가 아들이라도 아버지의 권위나 권력에 도전하는 것을 용서할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성인이었으며 능력도 있는 인물이었던 웨일스 공이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며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더욱더 커지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조지 1세


캐롤라인은 당연히 시아버지와 남편 사이에서 남편쪽에 더 치중햇었습니다. 하지만 캐롤라인은 늘 다정한 인물이었으며 이것은 무뚝뚝한 시아버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조지 1세 역시 아들보다는 며느리에게 좀더 호의적으로 대했었습니다.


부자관계가 악화되면서 늘 그렇듯이 캐롤라인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1716년 캐롤라인은 아이를 사산했으며 캐롤라인 역시 거의 죽을뻔했습니다. 하지만 다음해인 1717년 캐롤라인은 다시 한번 아들인 조지 윌리엄을 낳게 됩니다. 이 아이는 영국에서 태어난 왕자로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의 세례식때 조지 1세와 웨일스 공의 대립은 극에 달하게 됩니다.

1717년 태어난 캐롤라인의 아들 조지 윌리엄


아이의 이름을 두고 캐롤라인은 윌리엄(빌헬름)을 선호했지만 조지 1세는 조지(게오르그)라는 이름을 선호했습니다. 결국 아이의 이름은 조지 윌리엄이 되었고 아이의 이름을 두고는 큰 갈등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세례식때 대부모의 대리에 대한 문제는 가족간의 갈등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아이의 대부모로는 캐롤라인의 남동생인 안스바흐의 빌헬름 프리드리히와 조지 1세의 딸이자 웨일스 공의 여동생인 프로이센의 왕비인 조피 도로테아가 됩니다. 그리고 아이의 대부모를 대신해서 참석하는 인물들에 대해서 조지 1세는 뉴캐슬 공작 토마스 헬팸-홀스와 세인트 알반스 공작부인인 다이애나 뷰클럭이 각각 안스바흐의 마르크그라프와 프로이센의 왕비를 대리하기로 했습니다.


세인트 알반스 공작부인은 캐롤라인의 시녀였기에 괜찮았지만 문제는 국왕의 시종중 한명이었던 뉴캐슬 공작과 웨일스 공이 사이가 나빴다는 것입니다. 조지 1세는 이 사실을 알았지만 신경쓰지 않고 뉴캐슬 공작을 아들에게 보냈는데 웨일스 공은 뉴캐슬 공작에 대해서 기분이 나빴으며 둘은 말다툼을 하다가 급기야는 결투할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상황이 크게 확대되자, 조지 1세는 당연히 화를 냈으며 아들을 궁전에서 쫓아냈고, 웨일스 공은 런던에 있던 레스터하우스로 이사하게 됩니다. 조지 1세는 아들만 쫓아냈으며 며느리와 손자 손녀들은 그대로 뒀었는데 캐롤라인은 남편을 따라 가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조지 1세는 며느리가 남편을 따라가는 것에 대해서 관여하지 않았지만 손자 손녀들을 데려가는 것을 허락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캐롤라인은 아이들과 떨어져서 남편을 따라가야했습니다.


뉴캐슬 공작 토마스 헬팸-홀스, 그는 조지 2세와 사이가 너무 나빴지만 조지 2세가 즉위 한뒤 정치적으로는 서로 협력하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캐롤라인은 아마도 아이들과 있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상황이며 자신이 남편을 따라가지 않는다면 남편이 자신에게 크게 실망할것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캐롤라인은 아이들과 남편 중에서 남편을 선택할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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