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생활을 위해서...영국의 캐롤라인 왕비(12)

영국에서 : 조지 1세의 왕위계승

by 엘아라

시간이 지나면서 팔츠의 조피가 영국의 왕위를 게승할 것이 더욱더 확고해지게 됩니다만, 휘그당과 토리당의 갈등이 더욱더 심해지면서 휘그당이 지지하는 하노버 가문과 토리당과 토리당에 호의적인 앤 여왕사이의 갈등은 더욱더 심해지게 됩니다. 이것은 양 가문의 갈등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정치적으로 민감했었던 하노버의 선제후 조차도 앤 여왕의 처사에 불만을 품을 정도였습니다.


특히 1714년 갈등이 최고였었는데 어쩌면 이것은 앤 여왕의 치세가 다했기 때문에 정치가들이 서로 마음이 조급했을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갈등으로 인해서 아마도 1714년 6월 카롤리네의 시할머니인 팔츠의 조피가 사망했을때 여러가지 뒷말이 나오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팔츠의 조피는 앤 여왕보다 25살이나 많았지만 훨씬 더 건강했었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이때문에 앤 여왕과 조피 사이에서 불쾌한 편지가 오갔고 이에 조피가 화가나서 쓰러져서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습니다. 어쨌든 조피가 죽은 뒤 2달쯤 지난뒤 앤 여왕 역시 사망합니다. 그리고 카롤리네의 시아버지인 하노버의 선제후가 이제 영국의 조지 1세로 즉위하게 됩니다.


앤 여왕


앤 여왕이 사망한뒤 하노버의 선제후인 게오르그 루드비히는 즉시 영국의 국왕 조지 1세로 선포됩니다. 하지만 조지1세는 서둘러 영국으로 가지 않고 잠시 시간을 둡니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여전히 영국내에서 올드프리텐더를 지지하는 인물들이 많았으며 이들이 다른 일을 할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서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카롤리네와 그녀의 남편은 생각이 좀 달랐습니다. 아버지 선제후가 모든 권력을 장악한 하노버와 달리 영국은 국왕이 완전히 모든 것을 독점할수는 없었습니다. 이때문에 카롤리네의 남편인 게오르그 아우구스트는 하노버에서와 달리 자신도 정치에 관여할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카롤리네 역시 새로운 세상에서 남편과 함께 무엇인가를 할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했을 것입니다.


조지 1세


결국 조지 1세와 그의 아들인 게오르그 아우구스트(후에 조지 2세)는 영국으로 떠나게 됩니다. 카롤리네 역시 아이들과 함께 남편과 시아버지를 따라가려했었지만 딸이 아팠기에 카롤리네는 남편과 함께 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다 나은 뒤에 딸들과 함께 영국으로 건너갑니다. 하지만 장남인 프리드리히는 가족과 따라가지 않습니다. 조지 1세는 영국의 통치가 자신에게 힘을 줄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가문의 전통적 영지인 하노버 역시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조지 1세는 장손이자 후계자가될 프리드리히를 하노버에 남기길 원했고 조지 1세의 동생으로 하노버에 남아서 하노버 총독으로 하노버를 통치하기로 한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에게 맡겼었습니다.


1716년 조지 2세 당시 웨일스 공


조지 1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카롤리네의 남편인 게오르그 아우구스트는 영국에서 왕위계승자인 웨일스 공 조지가 됩니다. 그리고 카롤리네 역시 웨일스 공비 캐롤라인이 되었습니다. 캐롤라인은 조지 1세 궁정에서 가장 높은 지위의 여성이었습니다. 조지 1세는 아내와 이혼한뒤 정부였던 멜루지네 폰 데어 슐렌부르크와 계속 살고 있었으며 멜루지네 폰 데어 슐렌부르크는 조지 1세와 함께 영국에 왔었지만, 독일식 관습을 따랐던 조지 1세는 멜루지네 폰 데어 슐렌부르크를 왕비로 만들 생각이 없었기에 결국 캐롤라인이 영국 궁정에서 가장 높은 여성이 되었습니다.


캐롤라인. 1716년 당시 웨일스 공비


아마 캐롤라인은 남편과 함께 영국에서 새로운 삶을 기대했을 것입니다만, 남편과 시아버지의 불화는 영국에서도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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