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생활을 위해서...영국의 캐롤라인 왕비 (11)

하노버에서 : 영국의 정치적 상황과 정부의 등장

by 엘아라

카롤리네가 시아버지와 남편의 불화를 보고있는 동안 영국에서는 왕위계승에 대한 문제와 정치적 상황이 더욱더 복잡해지게 됩니다. 1701년 윌리엄 3세 시절에 발표된 법률을 통해서 가톨릭 교도나 가톨릭교도와 결혼한 영국 왕족은 영국 왕위계승에서 배제했으며 이때문에 메리 2세와 앤 여왕의 이복 남동생있던 올드프리텐더(제임스 2&7세의 아들인 제임스 프랜시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의 왕위계승권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수많은 가톨릭 교도나 가톨릭 교도와 결혼한 왕족들이 왕위계승권에서 다 배제되면서 결국 카롤리네의 시할머니인 팔츠의 조피에게까지 왕위계승권리가 넘어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당대 영국의 정치 상황은 팔츠의 조피가 왕위를 이어받는데 유리하기만 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카롤리네의 시할머니, 팔츠의 조피, 하노버의 선제후비


제임스 2&7세의 딸이었던 앤 여왕 시절 왕위계승자 문제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에서 견해차를 만들었습니다. 잉글랜드에서는 팔츠의 조피를 왕위계승자로 인정했지만 스코틀랜드에서는 잉글랜드에서 정한 왕위계승자를 그대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습니다. 앤 여왕은 스튜어트 가문 출신이었지만 잉글랜드에서 선택한 다음 왕위계승자는 스튜어트 가문과 멀고먼 친척일뿐이었고 제임스 2&7세의 아들인 올드 프리텐더가 살아있는 상황에서 이런 멀고먼 친척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었습니다. 결국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에게 왕위계승자를 받아들이도록 압박을 가했으며 결국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하나의 나라인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으로 묶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영국의 기본이 됩니다.)


앤 여왕 당시 영국에서는 양당정치가 강화되었습니다. 바로 토리당과 휘그당이 그 중심이었습니다. 앤 여왕은 토리당에 좀더 호의적이었다고 알려져있었는데 여왕의 측근들 상당수가 토리당쪽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토리당은 왕위계승자 문제에서 올드 프리텐더에 좀더 호의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토리당쪽에서는 올드프리텐더가 가톨릭을 버리고 개종한다면 왕위계승권을 복권시켜주겠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었다고도 합니다. 당연히 양당정치가 강화되었기에 토리당에서 올드프리텐더에 좀더 호의적이 되었다면 반대파인 휘그당쪽에서는 당연히 독일쪽 왕위계승자들을 지지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제임스 프랜시스 에드워드 스튜어트, 제임스 2&7세의 아들, 올드프리텐더


문제는 카롤리네의 시아버지인 하노버의 선제후가 이 문제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게 생각했었다는 것입니다. 휘그당이 그의 어머니와 그를 지지하는 것은 좋긴했지만, 반대당인 토리당은 물론 당시 군주였던 앤 여왕이 그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역시 군인이자 정치가였던 하노버의 선제후는 아마도 영국의 정치에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이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휘그당과 토리당의 정치 투쟁에 연결되어 앤여왕과 자신의 대립구도로 갈것을 우려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될수있는대로 영국 정치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카롤리네의 시할머니인 팔츠의 조피는 생각이 조금 달랐습니다. 직접적 왕위계승자였던 조피는 손자인 게오르그 아우구스트가 아들인 하노버의 선제후가 마찰을 빚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했으며 차라리 손자를 영국으로 보내서 활동하게 하고 싶어했습니다. 이것은 일단 부자간의 마찰을 피하게 할수 있을뿐 아니라 손자가 영국에서 자리를 잡으며 자신의 계승권리를 더욱더 강화시킬수 있으리라 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앤 여왕은 거부했고 심지어 화를 내기까지 합니다. 이런 상황은 당연히 하노버에도 전해졌고 하노버의 선제후는 다시 아들에 대해서 부정적이 되는 악순환이 되기도 합니다.


엔 여왕



정치적 갈등이 심해지고 있긴했지만 영국에서는 점차 팔츠의 선제후와 그 후손들이 영국의 왕위를 물려받을 것이라는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미래의 군주 가족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서둘러 하노버로 오게 됩니다. 그중에는 서퍽백작의 셋째하들이었던 헨리 하워드와 그의 아내인 헨리에타 하워드가 있었습니다. 헨리 하워드는 영국에서 도박등으로 인해서 빚을 너무 많이 졌기에 도저히 살수가 없었으며 차라리 하노버로 가서 무엇인가 하려했습니다. 간신히 하노버로 도착했던 하워드 부부는 곧 힘을 얻게 됩니다. 헨리에타 하워드는 매우 교육을 잘 받았을뿐만 아니라 위트있고 영리한 여성이었습니다. 당연히 이런 교양있는 사람에 대해서 카롤리네의 시할머니인 팔츠의 조피는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으며 하노버 궁정에서 헨리에타 하워드는 두각을 나타내게 됩니다.


헨리에타 하워드는 궁정에 소개 된 뒤 곧 카롤리네의 남편인 게오르그 아우구스트의 관심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헨리에타 하워드는 그의 공식 정부가 됩니다.


헨리에타 하워드, 서퍽 백작부인, 조지 2세의 공식 정부


남편에게 공식적으로 관계를 맺는 다른 여성이 생긴것에 대해서 카롤리네는 이 상황을 그냥 받아들일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당대 왕족 남성들이 정부를 들이는 것은 일반적인 관습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도덕적으로 아주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며 많은 왕족 여성들이 남편의 이런 부정을 그냥 받아들이고 살아야했었습니다. 카롤리네의 시할머니 역시 평생 남편의 정부를 용인하고 살아야했으며 심지어 궁정내 권력까지도 뺏긴채 살기도 했었습니다. 또 카롤리네의 시어머니는 남편의 정부를 용납할수 없었기에 결국 이혼당한채 평생 갇혀살기도 했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상황에서 카롤리네가 남편의 정부를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여겨야했을수 있습니다. 게다가 카롤리네와 게오르그 아우구스트는 점차 부부로 오래 살았기에 서로의 결점을 발견하고 있었으며 이것은 부부 사이를 악화시킬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대에는 자연스럽게 게오르그가 다른 여성에게 눈을 돌리는 것이 서로의 부부관계를 계속 유지할수 있게 할 것이라 여겼습니다. 또한 카롤리네는 아마도 비록 남편이 당대 관습처럼 정부를 받아들여도 가장 사랑하는 여성은 자신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특히 새아버지가 자신의 정부를 너무나 사랑해서 천연두에 걸린 정부를 간호하다가 사망했던것처럼, 자신의 남편 역시 자신이 천연두에 걸렸을때 자신을 간호하느라 같이 감염되었을 정도였던것을 절대 잊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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