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생활을 위해서...영국의 캐롤라인 왕비(14)

영국에서 : 아이들과의 이별과 재회

by 엘아라

캐롤라인은 남편과 아이들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했을때 남편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레스터 하우스에서 조지 1세에 불만을 품은 정치가들이 모여들었으며 웨일스 공은 이들과 연대를 했고 캐롤라인 역시 이런 정치적 모임에서 핵심 인물로 사교계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캐롤라인은 자녀들과 떨어져사는 것 역시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이미 장남을 강제로 하노버에 두고 온 경험이 있는 캐롤라인은 다른 자녀들과 떨어져 지내면서 심지어 만나지도 못하는 상황에 힘들어합니다. 아이들 역시 부모를 그리워했었으며 부모와 만나기 위해노력했었습니다. 특히 캐롤라인의 큰딸인 앤 공주는 부모와 할아버지 사이에서 어떻게든 역할을 해서 부모와 좀더 함께 지내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었습니다.

캐롤라인은 국왕 몰래 아이들을 만나러 가기도 했었습니다. 사실 국왕 몰래 만나러 간다고 하더라도 국왕 역시 모를리가 없었기에 아이들과 부모를 떼어놓는 일에 대해서 조지 1세 역시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특히 모든 일의 발단이 되었던 조지 윌리엄이 태어난지 3개월만에 사망하자 조지 1세는 아들과 며느리, 특히 며느리는 아이들을 언제라도 볼수 있게 해주게 됩니다.


Three_princesses_by_Maingaud.jpg?20100629222442 캐롤라인의 세딸들, 앤, 아말리아, 캐롤라인


조지 윌리엄이 죽고 캐롤라인은 다시 한번 유산을 하게 됩니다. 물론 조지 윌리엄이 죽은 것은 부모와 떨어져 지내서라기 보다는 병때문에 사망한 것입니다만 캐롤라인에게는 아들의 죽음은 너무나 힘든 일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기에 캐롤라인은 이제 어떻게든 아이들과 함께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되찾기 위해서는 정치적 영향력이 필요하다고 느꼈으며 영향력 있던 정치가인 로버트 월폴과 협력해야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로버트 월폴은 후에 영국의 수상으로 영국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인물로 이때도 영향력이 어느정도 컸었습니다. 그는 국왕의 정책을 반대했기에 같은 휘그당내에서 갈등을 빚다가 지위를 사임하고 물러난상황이었습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당연히 국왕과 갈등을 빚었기에 역시 국왕과 갈등을 빚는 웨일스 공과 어울리고 있었습니다. 캐롤라인은 이들의 영향력이 커진다면 국왕을 압박해서 아이들과 함께 살수 있을 것이라 여겼었습니다. 그리고 유능한 정치가였던 월폴은 캐롤라인의 생각대로 국왕에게 압박을 가할수 있었습니다만, 조지 1세는 여전히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조지 1세는 며느리에게 남편을 떠나서 아이들과 함께 지낸다면 환영한다고 했지만 아이들을 남편이 있는 집으로 데려가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했었습니다.


374px-Retuched_Painting_of_Robert_Walpole.jpg?20190925175328 로버트 월폴, 1대 옥스퍼드 백작, 그는 조지 1세와 조지 2세때의 수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1720년 장녀인 앤 공주가 천연두에 걸릴때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앤 공주가 천연두에 걸리자 캐롤라인은 당장 아이에게 달려가게 됩니다. 앤 공주는 얼굴에 흉터가 남았지만 결국 살아남았습니다만 이것은 웨일스 공 부부와 조지 1세 모두에게 공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웨일스 공 부부는 자신들이 없을때 다른 자녀들이 또 사망할까봐 겁이 났으며 조지 1세는 다른 손녀가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상황에서 죽을까봐 겁이 났었습니다. 이것은 결국 왕실 가족들이 화해를 할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캐롤라인은 월폴에게 자녀들과 무조건 함께 지내야한다고 최선을 다하라고 압력을 넣었으며 월폴 역시 웨일스 공에 대한 캐롤라인의 영향력을 알기에 정치적 협상을 이끌어낼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483px-Anneofhannover_princess_of_orange.jpg?20140709063824 캐롤라인의 장녀, 앤 공주, 프리세스 로열 앤, 오라녜 공비


캐롤라인은 남편이 아버지에게 사과 편지를 쓰고 국왕이 이를 허용하면 아이들과 함께 지낼수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만, 웨일스 공은 편지에서 아버지에게 경제적 문제등의 정치적 협상을 언급했습니다. 당연히 캐롤라인은 경악했는데 잘못하면 남편이 시아버지에게 자녀를 팔아먹었다는 오해를 받을수도 있는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캐롤라인은 시아버지와 남편이 만나는 자리에 참석할수 있었으며 결국 부자는 화해하게 됩니다. 사실 조지 1세와 웨일스 공의 화해는 정치적인 의도와 경제적 의도가 강했었습니다. 웨일스 공은 쫓겨나있는 동안 부채가 커져서 재정압박을 받고 있었으며 조지 1세는 가족간의 불화가 자코바이트들에게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보여주기식이든 간에 결국 화해는 화해였으며 캐롤라인은 아이들과 만나서 함께 살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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