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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Sep 09. 2023

근친혼은 원래 금지라며...

왕족들 이야기로 읽는 포르투갈의 역사...다섯번째

포르투갈은 오래도록 이웃의 카스티야와 갈등을 빚어왔으며 이 때문에 아라곤과의 외교관계를 추구했었습니다. 카스티야와 포르투갈이 맞닿아 있는 것처럼 아라곤과 카스티야 역시 맞닿아있었기에 이 두나라 역시 포르투갈과 카스티야처럼 갈등을 빚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이야기처럼 포르투갈은 당연히 공동의 적인 카스티야를 대응하기 위해서 아라곤과 동맹을 맺으려했고 이런 동맹은 아라곤 왕가와 포르투갈 왕가의 결혼으로 이어집니다.


한편 카스티야와 포르투갈은 갈등을 자주 빚었지만, 갈등후에는 평화협정을 체결했고 이때 역시 이 평화협정의 보증으로 두 왕가간의 결혼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카스티야와 아라곤 역시 갈등후에 평화를 위해서 두 왕가간의 결혼을 했고 이것은 이베리아 반도 내 세 왕가간의 근친결혼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카스티야의 국왕 페드로, 그의 할머니도 포르투갈 공주였고 어머니도 포르투갈 공주였을뿐만 아니라 부모는 이중사촌간이기도 했습니다.


13세기 포르투갈이 생긴 초기에도 카스티야(와 레온)과의 평화를 위해서 공주들이 레온으로 시집갔었지만 결국은 근친결혼이라는 이유로 교회에 의해서 결혼이 무효와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사실 교회가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여러 왕가들에 간섭한 면도 있었을뿐만 아니라 포르투갈이 막 독립한 상태였기에 상대적으로 불안정했고 이것은 교회의 영향력이 더 컸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14세기가 되면서 양상이 달라지게 되는데 먼저 교황의 권위가 훨씬 떨어졌을뿐만 아니라 포르투갈 역시 이제 국자체게를 완전히 확립한 나라로 왕권이 교회권을 억누를수 있을만큼의 힘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했었습니다. 


13세기 포르투갈의 인판타들의 결혼과 결혼무효


사실 포르투갈에서는 이베리아 반도의 국가와만 통혼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포르투갈의 인판타(공주)들은 멀리 외국으로 시집가기도 했었는데 이를테면 아폰수 1세의 딸인 테레자는 플랑드르 백작과 결혼해서 플랑드르 백작부인이 되었습니다. 이런 연결고리는 포르투갈의 인판타들이 먼 유럽의 다른 왕가로 시집갈수 있는 계기가 되었는데 상슈1세의 막내딸이었던 베렝겔라는 고모를 따라서 프랑스 궁정으로 갔다가 역시 복잡한 외교관계 때문에 테레자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던 덴마크의 국왕 발데마르 2세와 결혼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관계 때문에 아폰수 2세의 딸인 레오노르 역시 덴마크로 시집갔었습니다. 


포르투갈의 베렝겔라, 덴마크의 왕비, 검은 머리에 매우 아름다웠던 베렝겔라는 금발머리에 인기있었던 남편의 전처와 대비되는 인물이었다고합니다.


하지만 아폰수 3세 이후 포르투갈과 카스티야와의 관계는 더욱더 밀접해지게 되면서 갈등과 화해를 반복했고 이것은 두 왕가 간의 통혼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포르투갈은 알가브르Algarve지방에 대한 영유권을 두고 카스티야와 반목중이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폰수 3세는 카스티야의 국왕 알폰소 10세와 협정을 체결했으며 이를 보증하기 위해서 아폰수 3세는 알폰소 10세의 사생아 딸이었던 카스티야의 베아트리스와 결혼을 했었습니다. 


아폰수 3세의 아들인 디니스는 어머니인 베아트리스와 마찰을 빚었고 아마도 이런 상황은 그가 카스티야를 견제하기 위해서 아라곤과의 통혼을 추진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디니스는 아라곤의 페드로 3세의 딸이었던 아라곤의 이사벨과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카스티야와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디니스는 자신의 딸인 콘스탄사와 아들이자 후계자인 아폰수를 카스티야 국왕과 그 누이동생인 베아트리스와 결혼시키기로 합니다. 이렇게 카스티야와 포르투갈 왕가간의 결혼이 이루어집니다.


포르투갈의 콘스탄사, 디니스의 딸, 카스티야의 페르난도 4세의 왕비


디니스의 아들인 아폰수 4세는 카스티야의 국왕이자 자신의 조카이자 처조카이기도 한 알폰소 11세와 딸인 마리아를 결혼시키려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곧 포르투갈과 카스티야와의 갈등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알폰소 11세는 마리아와 결혼하기전 카스티야의 귀족출신 여성이었던 레오노르 데 구스만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알폰소 11세는 마리아와의 사이에서 아들인 페드로가 태어난뒤 아내를 버리고 대놓고 정부와 함께 살았고 레오노르 데 구스만과 자녀들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합니다. 이것은 마리아는 물론 마리아의 아버지인 아폰수 4세의 화를 불러일으켰고 그는 여러곳과 동맹을 맺고 사위를 공격해서 정부와 헤어지라고 강요했었습니다. 하지만 알폰소 11세는 잠시만 헤어지는척했지, 여전히 레오노르 데 구스만과 지냈었습니다.

포르투갈의 마리아, 아폰수 4세의 딸, 카스티야의 알폰소 11세의 왕비


이렇게 되자 화가난 아폰수 4세는 아들인 페드루를 알폰소 11세의 전 약혼녀이자 알폰소 11세에 적대적이었던 빌렌나 공의 딸인 콘스탄사 마누엘과 결혼시키기로 결정합니다. 콘스탄사 마누엘 역시 사실 카스티야 왕가의 후손으로 역시 친척관계이기도 했습니다.


카스티야와 포르투갈의 결혼 관계,  녹색이 결혼을 의미하고 검은색은 부모자식간입니다.


한 세기 전만하더라도 사촌은 물론 육촌이나 그 이상의 관계였어도 근친혼으로 판단되어서 결혼이 무효화 되었던것과는 반대로 14세기에는 이렇게 가까운 친척간의 결혼도 허용되었고 이후 이베리아 반도의 정치 상황이 복잡해지고 내전등이 지속되면서 동맹이나 평화 협정을 위해서 더욱더 근친결혼을 하는 경향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후대에도 계속 이어지면서 포르투갈이나 카스티야 아라곤 더 나아가서 에스파냐 왕가의 근친결혼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더하기

..근친결혼으로 유명한 합스부르크 가문도 에스파냐 왕위를 얻기전까지는 근친결혼이 별로 없었던....


그림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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