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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Dec 06. 2023

신발 & 인생

여행을 업으로 하는 내게 가장 중요한 아이템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코 신발이다.


종일 걷고 뛰고, 거의 매일 같이 하루 평균 만 이천보를 보장하는 여행의 특성상 내 몸에 잘 맞는 신발은 일의 진행뿐만 아니라 내 건강과 행복도 책임진다고 볼 수 있다. 발이 편한 신발은 장시간 버스나 기차, 비행기를 탈 때도 굳이 벗지 않고 신고 있게 된다. 


착용감이 마치 가족이 나를 껴안아 줄 때의 느낌일 정도로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편안함에 안정감까지 얻는다. 평지든 경사든 포장이든 비포장이든 어디를 걸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은 물론, 십이 만보를 걸어도 (물론 그렇게까지 혹사한 적은 없고 하고 싶지도 않지만) 막내 딸랑구 등하굣길 다녀온 기분일 것 같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에 사무실에서 일하던 때와 달리 워낙에 많이 걷다 보니 신발을 자주 운동화든 구두든 자주 사는 편이다. 세상에는 무한대에 가까운 신발이 있지만, 디자인과 편안함을 다 갖춘 신발, 내 발에 잘 어울리는 신발을 찾는다는 건 의외로 로또 당첨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신는 신발 대부분은 둘 중 어느 하나를 포기하거나 감수한 것들이다.


처음 신는 신발과는 언제나 서로가 서로를 길들이는 데 있어 시간이 필요하다. 발 뒤꿈치가 까지든, 신발 뒤를 구기든, 앞볼을 넓히든 신과 발은 첫눈에 반한 상태로 만나지 않는다. 하다 못해 끈조차도 풀었다 조였다 하기를 몇 번씩 한다. 신는 동안에도 발을 몇 번씩 툭툭 차기도 하고 가끔 예상치 못한 이물질이 툭 튀어 들어가 벗었다 신었다를 반복할 때도 있다.




인생이 그런 것 같다. 누군가를 만날 때든,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든 항상 초반에는 서로 간 알아보고 조율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완벽한 맞춤은 없는 듯하다. 나도 나 자신을 몰라 실망하고 속상해할 때가 있는데 상대야 오죽하겠는가. 그도 나를 보고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모든 걸 다 내 뜻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될 수는 없는 것이 당연하다. 어쩌면 그리 되어서도 안 되는지도 것일지도 모른다. 신도 신의 뜻대로 모든 것을 움직이는 바가 아니기에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세상 모든 것도 아니고 돈과 시간, 딱 두 가지만 보더라도 둘 다 가지는 경우는 극소수이다. 대개는 하나를 포기하거나, 감수하고 살아간다. 경제적 자유, 시간의 자유를 꿈꾸는 건 필요하지만, 너무 자신을 가혹하게 매몰아치면 결국 둘 다 얻는 순간 정작 자기 자신과 자신이 사랑할 대상을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


신은 신고 나갈 때가 제 할 일을 다하는 것이다. 나는 무엇으로 내 역할과 기능을 하고 있을까. 새로운 팀을 맞이하러 나간 공항. 단정하게 차려입은 정장. 여기에 맞춘 검정 구두가 조명을 받아 반짝인다. 


제목 사진: Image by pexel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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