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영화나 책을 보기가 어려워진다.
지난달에 봤던 좋아하는 영화도 그랬고, 금요일에 본 기대하던 영화를 봤을 때도 그랬다.
늘 영화관을 나오면서 생각한다.
뭐, 그냥 그렇네, 기억에 남을 정도는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일이 잦아졌다.
잔뜩 기대하던 영화나 책을 보고 난 뒤의 실망감.
영화관에 나오면서 늘 짜릿하고 생생하게 모든 장면을 기억하며 감탄했던 날들은 가고, 이제는 그냥 모든 게 시시해지고 나오자마자 다 잊어버리게 되는 날들.
마치 시험을 보고 나올 때 방금 본 문제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처럼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와 장면들.
기대를 너무 많이 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소재가 고갈되어가고 새로운 소재를 찾아 내용을 심오하고 어렵게 만들려는 추세가 더해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거기다 시간이 흐르며 다양한 감각이나 감정에 무던해지고 시시하게 하는 ‘세월’의 잘못도 있을 것이고.
영화뿐만이 아니라 책도 그렇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두근거림, 모든 단어나 구 하나하나가 너무나 내 마음 같고 표현이 참신해서 늘 펜을 옆에 두고 책을 읽으며 쉴 새 없이 밑줄을 치던 날들은 사라지고, 이제는 가슴 뛰게 만들던 구구절절한 문장들을 찾아 헤매다 단편 하나가 그냥 그렇게 무던하게 끝나버릴 때의 허무함과 다음 단편에 섞인 기대감과 의심만이 남았다.
이것 또한 세월이 준 무감각의 탓이 아닐까 싶다.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난다는 것은 예전에는 작은 소란에도 큰 파장이 일었던 내 마음이 이제는 좀 잠잠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어지간한 파장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그것은 곧 망각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주는 큰 장점일 수 있을 테고, 동시에 단점일 수도 있겠지.
웬만한 이벤트에는 더 이상 감정이 동요하지 않아서 마음의 평화를 찾은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 살지만, 가끔 아무 기쁨이나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소시오패스가 된 기분이다.
그런 기분으로 하여금 나는 글을 쓰는 게, 나를 표현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