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준비하고 싶지 않은 밤이 있다.
나는 루틴도 거의 일정하고 패턴도 일관적인 편이라 당일에 할 것들도 대체로 정해져있고, 다음날 챙겨두어야 할 것도 늘 있다.
예를 들면, 다음날 먹을 영양제를 챙겨둔다거나 안경을 잘 닦아서 가방에 챙겨놓는다거나 아이패드를 미리 충전해놓는 등의 것들.
그건 아마도 오늘의 멀쩡한 내가 다음 날도 내가 아무렇지 않게 눈을 떠서 내일을 살아갈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해서일 거다.
근데 오늘 같은 날은 내일을 준비하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내일이 없었으면 하는 날.
내일을 위한 그 어떤 준비도 하고 싶지 않고 할 일을 그냥 다 제쳐두고 약에 의지한 채 그저 침대에 엎드려 깊은 잠에 빠지고 싶은 밤.
그런 날이 요새 흔치 않다보니 그런 밤이, 그런 우울이 급작스레 밀려들 때면 나조차도 무섭다.
감당하기가 두렵고, 이 어둠이 너무 간만이라 더 어두운 것만 같고.
오래간만에 굴을 살짝 파고 들어왔더니 붕 떠있던 맘이 진정되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이런 내리막길이 예전에는 늘 있던 일이라 익숙했는데 오늘따라 경사가 더 굴곡진 것만 같다.
약을 좀 센 걸 먹어봤다.
내일은 부디 괜찮은 나로 돌아오길 기다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