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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서C Nov 01. 2017

바깥은 여름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다는 것에 대한 슬픔 -

1.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은 단편 소설집입니다. 각각 다른 지면에서 발표된 여섯 개의 단편을 같이 묶고 제목을 붙여 책을 펴냈습니다. 서로 다른 단편이지만 각각의 작품을 관통하는 공통의 정서가 깔려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다는 것에 대한 슬픔, 그리고 슬픔에 대한 애도가 그것입니다.


2.  

<바깥은 여름>은 상실에 관한 이야기들이 담겨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평범한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우리들이 겪어 내고 있는 '잃어버린다는 것에 대한 슬픔'을 다루고 있습니다. 각 단편들의 장면은 너무나도 일상적이어서 마음에 쉽게 와닫고 감정선이 올라갑니다. 일상성을 포착하고 담담하게 슬픔을 말하는 작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입동>에서 불의의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부가 아픔을 겪어내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아이의 부재 속에서도 살아가야 하며 그 아픔을 넘기려는 모습을 담담히 그려냅니다. 요란하지 않고 담담히 그려내는 작법은 오히려 더 큰 슬픔을 공유하게 만듭니다. <노찬성과 에반>에서 늙은 개를 보내는 찬성의 모습과 <건너편>에서 다룬 조금씩 멀어저가는 연인의 이별 역시 먼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 옆의 이웃들의 이야기 같아 슬픔이 만져지는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슬픔은 결국 혼자인 것이어서 아이폰 siri를 붙잡고 대화를 이어가는 명지의 이야기에 공감하게 만든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읽다가 여러 번 호흡을 조절해보기도 하였습니다.


4.

슬픔을 다루는 작가의 능력이 빼어납니다. 문장을 담담하게 그려내지만 그 문장들 속에 슬픔을 뚝 떨어뜨려놓는 모습에서 감탄하기 여러 번이었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 속 인물의 마음을 완전히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하는 데 그런 면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각 단편의 주인공들은 책을 덮은 후에도 여전히 내 주변 어딘가에서 버티며 극복하며 살아 있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슬픔을 버티며 이겨내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과 문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능력은, 왜 김애란 작가가 젊은 작가 중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지를 말해줍니다.


5.

전작 <두근두근 내인생>에서 문장을 중의적으로 구성하는 능력과 이야기를 전개하는 스토리텔링의 마법에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에게는 세월호 이야기를 다룬 <눈먼자들의 국가>에서 섬세한 언어와 사람을 대하는 시선, 특히 분노를 안고 담담하게 슬픔을 말하고 있는 그의 글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합니다. 더욱이 그녀의 단편집 <바깥은 여름>을 덮은 요즘, '이제는 김애란이라는 작가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문학] 바깥은 여름 / 김애란 / 문학동네






"아이들은 정말 크는 게 아까울 정도로 빨리 자랐다. 그리고 그런 걸 마주한 때라야 비로소 나는 계절이 하는 일과 시간이 맡은 몫을 알 수 있었다. 3월이 하는 일과 7월이 해낸 일을 알 수 있었다. 5월 또는 9월이라도 마찬가지였다."(p18)


"지난봄, 우리는 영우를 잃었다. 영우는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치여 그 자리서 숨졌다. 오십이 개월. 봄이랄까 여름이란 걸, 가을 또는 겨울이란 걸 다섯 번도 채 보지 못하고였다. 가끔은 열불이 날 만큼 말을 안 듣고 말썽을 피웠지만 딱 그 또래만큼 그랬던, 그런 건 어디서 배웠는지 제 부모를 안을 때 고사리 같은 손으로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던, 이제는 다시는 안아볼 수도, 만져볼 수도 없는 아이였다. 무슨 수를 쓴들 두 번 다시 야단칠 수도, 먹일 수도, 재울 수도, 달랠 수도, 입 맞출 수도 없는 아이였다. 화장터에서 영우를 보내며 아내는 '잘 가'라 않고 '잘 자'라 했다."(p21)


"그냥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졌어. 그리고 그걸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아."(p115)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가을 풍경 속에 안긴 두 사람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쩐지 두 사람이, 좋은 일은 금방 지나가고, 그런 순간은 자주 오지 않으며, 온다 해도 지나치기 십상임을 아는 사람들 같아서였다."(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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