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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ce Mar 17. 2020

조금은 나아질 줄 알았어요.

하고 나니 아무것도 아니잖아.


Photo by bhuvanesh gupta on Unsplash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나에게도 몇 년 동안이나 고민이 되는 일이 있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역시나 고민은 고민일 뿐 행동으로 옮기는 건 결국 시간문제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오랫동안 고민했던 일은 바로 타투. 지금 내 발목 뒤쪽에는 위의 사진과 비슷한 타투가 새겨져 있다.


처음 흥미를 갖게 된 건 약간의 호기심이었다. 사람들은 왜 타투를 몸에 새길까, 그 타투들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후회하진 않을까 등등 오지랖이라면 오지랖이었던, 쓸데없는 호기심. 그렇게 점점 타투를 보다 보니 이게 어느샌가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쯤은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부턴 어떤 타투를 새길까 타투 도안들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릴까, 레터링을 할까 온갖 도안들을 찾아봤으나 마음에 드는 도안이 없어서 타투를 하려는 의지도 점점 사라져 갔다. 그렇게 타투는 나의 인생에서 멀어지는 듯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타투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접었을 때, 타투를 다. 심지어 그닥 마음에 들지도 않는 도안으로. 발단은 이랬다. 몇 년 전부터 나와 똑같이 타투를 하고 싶어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타투이스트라서 타투를 받기로 했다는 거다. 그래서 따라갔다가... 한 건 아니고, 막상 눈으로 보고 나니 이게 별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몇 년 동안이나 왜 고민을 했을까 싶기도 하고 약간은 허무했다. 당시 뭔가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무엇인가가 필요했던 참에 타투를 해볼까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니까 타투를 받고 나면 조금 리프레시가 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도안을 찾아서 예약을 하고 타투를 받는 데 까진 불과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곧 웨딩드레스를 입어야 하니 드레스를 입었을 때 보이지 않는 곳이면서 덜 아픈 곳을 골라 설레는 마음으로 타투를 새겼다. 소소하고도 소심한 일탈이었다. 그래서 받고 난 소감이 어떠냐고? 내가 만약 버킷리스트를 쓴다면 그 안에 꼭 들어가 있었을 정도로 꼭 하고 싶은 일이었음에도 기쁘지 않았다. 미루고 미뤘던 숙제를 드디어 해치웠다는 생각 정도. 그리고 내 예상보다 더 별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고작 몸에 타투 하나를 새긴다고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없었던 의욕이 활활 불타오르게 되는 것도, 새로운 능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 몸 어딘가에 조그만 그림이 하나 그려진 것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소심한 일탈은 약간의 깨달음을 주고 끝이 났다. 다음엔 어떤 일을 저질러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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