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이력서
사무실에서 신입사원 입사 지원서를 검토하던 강일 씨는 문득 현재 자신의 이력은 어떤가 떠올리게 되었다.
김강일.
47세 남자.
K대 경영학과 졸업.
육군 병장 전역 후 전자제품 제조업체 재경팀에서 직장생활 시작.
7년 전 학교 동아리 선배가 시작한 벤처 회사에 합류.
현재 총무팀장으로 재직 중.
한 여자의 남편.
1남 1녀의 아빠.
강일 씨의 이력서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놀라워하는 것이 있다.
컴퓨터 활용능력 1급, PC정비사 2급, 워드프로세서 1급, 인터넷 정보 관리사, 정보처리기사 자격은 물론 제대 후 아르바이트하며 취득한 지게차 운전 기능사 자격까지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노후 준비를 위해 주택관리사와 커피바리스타 자격증까지 취득하였다. 헛되이 낭비되는 시간을 용납하지 않고, 매사가 철저한 그는 상사로부터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부하 직원들로부터는 어려운 상사라는 평을 받고 있다.
강일 씨가 근무하는 회사 앱스마트는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하는 회사로 인공지능과 언어 인식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보급 확대와 함께 회사에서 개발한 음성 명령 조작 어플 상품이 꽤 성공적으로 판매되고 있고, 최근에는 인공지능 기반 학습 어플도 좋은 반응을 얻기 시작했다. 강일 씨 자신도 회사 설립 초기부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내년에는 임원급으로 승진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전 세계적으로 부진한 경기 속에서 이 정도면 잘 나가고 있는 셈이다.
캠퍼스에서 만난 아내와 결혼 초기에 갈등이 많았지만, 지금은 서로 모난 부분이 많이 닳아 편하게 지내고 있다. 표현하지는 않아도 직장 생활에 쏟은 열심만큼 소홀했던 가정을 잘 지켜준 아내가 고마울 따름이다. 아이들과의 관계는 좋았다. 적어도 재작년까지는.
바빠도 일 년에 두세 번은 들로 산으로 캠핑을 갔고,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부족함 없이 다 해 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큰 아이 민기가 중학생이 되면서 뭔가 대화가 삐걱거리는 일이 잦아졌다. 민기 생각을 하면 머리가 무거워진다. 아, 모르겠다. 강일은 골치 아픈 일을 털어 내듯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흔들었다.
분기에 한 번씩 회사의 팀장 6명이 함께 식사를 한다. 팀장들끼리 친목도 다지고, 여러 부서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정보를 편하게 공유하는 자리다. 선홍색 고추장 삼겹살이 지글거리는 불판 건너, 개발 1팀 유형민 팀장이 유난히 기분 좋은 듯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강일보다 세 살 어리지만 어플 개발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고, 예의도 바른 사람이라 평소 친하게 지내고 있는 사이였다.
"유 팀장님, 오늘 좋은 일 있나 봐요. 좋은 거 있으면 같이 좀 압시다."
"아, 제가 그리 보였어요. 허허. 사실 기분 좋은 일이 있어서요. 저희 팀에서 개발하는 어플을 중간 평가해 봤는데 비전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좋습니다."
"아니 유 팀장님이 그렇게 말할 정도면 대박이겠네요. 어떤 어플인데요?"
"사실 시장성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 생각엔 정말 유용한 기능이라서 의미가 있습니다. 아직 정식 출시명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프로젝트 굿 대디’라는 프로그램입니다." 평소 이성적인 유팀장의 목소리에서 작은 흥분이 전해졌다.
"에? 프로젝트 굿 대디? 좋은 아빠 되기 운동 같은 건가요? 그런 어플도 만들 수 있는 거예요?"
"저희가 하고 있는 일이 바로 그런 겁니다. 어때요? 김 팀장님도 관심 있으신가요? 여기서 설명드리기는 좀 길고요. 사실 주변 분들 도움도 필요한 상태거든요. 내일 제 방에 한번 들리시죠. 제가 설명도 드리고, 어플을 깔아 드릴게요."
"허, 재밌을 것 같네요. 내일 점심 먹고 들려 보겠습니다."
회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강일은 속이 울렁거렸다. 과한 술 때문인지 어쩌면 좋은 아빠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와 설렘 때문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