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대학에 입학했을 때 이렇다 할 롤모델도 없었고 그런 걸 찾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내가 가장 되고 싶었던 건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선배들이었다. 귀걸이를 하고, 날 선 셔츠와 바지를 입고, 밤이면 바와 클럽을 전전하던 선배들. 여자들에게 둘러싸인 그 선배들 같은 인기남이 되고 싶어서 나도 귀걸이를 하고 셔츠를 입어봤지만 내가 인기가 많아지진 않았다. 그저 어설프게 인기 많은 남자의 외양을 따라하려는 ‘변하지 않은’ 나 자신이 있을 뿐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어설프게 따라한 외양으로 어설프게 행동도 따라하려고 했었다. 술을 잘 마시려고 했고, 좌중을 휘어잡는 유머를 구사하려고 했다. 그러나 잠시 마음먹고 따라한 것만으로 잘 될 리가 없었다. 나는 그저 매일 술을 찾고, 그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리는 흔하디흔한 한 명의 주정뱅이 신입생에 불과했다. 술독에 빠진 나약한 인간이었다.
취직도 힘들고 돈 벌기도 힘들고 내 집 장만이니 뭐니 모두 힘든 사회지만 대학로의 열기는 아직 가시지 않고 있다. 모두가 술을 마시고 이 힘든 현실을 잠시나마 잊은 채 눈앞의 자극을 통해 인생을 즐겨보자는 마음을 가진 청년들이다. 술 마시는 일은 즐겁다. 누군가와 어울린다는 것 자체가 원래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즐거운 일이며, 술이라는 이완제가 몸을 촉촉이 적시고 스트레스를 풀어주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다 싶을 때면 이미 입술 끝도 광대뼈까지 올라가 붙어있다. 하지만 다음날 눈을 뜨면 가혹한 현실을 깨닫게 된다. 9시에 출석을 해야 하는데 8시 45분이거나, 오후까지 내야 할 과제가 있는데 하나도 하지 않았다거나, 필름이 끊겼었는데 휴대폰이나 지갑이 사라진 참혹한 현실이 여지없이 다가온다.
현실적으로도 계속 흥청망청 노는 건 불가능하다. 매일 3만원씩 들여가며 술을 마시면 그 돈만도 한 달에 90만원이 된다. 그런 돈을 계속해서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집안의 재력이 풍부할 테니 인생에 대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돈만 문제는 아니다. 한량들은 반드시 몸도 상하게 된다. 자기 관리를 하지 않는 사람이 건강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곧 체력이 떨어지고 면역력이 약해져 자주 병치레를 하거나 큰 병에 걸리게 된다.
가장 큰 문제는 마냥 노는 게 즐겁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사람은 오직 놀이를 위해서만 사는 동물이 아니다. 나는 대학교 때 많은 시간을 음주로 보냈지만 어떨 때는 의무적으로 혹은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는 것 같아 괴로울 때도 있었고, 같이 있는 사람과 이견이 있으면 그걸로 다투느라 쓸데없는 시간을 보냈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게다가 돈은 돈대로 연기처럼 사라졌고, 그 와중에 다른 친구들은 유학을 가기 위해 독일어를 공부하거나 사업을 해 보겠다고 3D 프린터에 대해 배우고 있었다. 그게 내심 항상 신경 쓰이고 괴로웠다. 나는 왜 이러고 있을까, 나는 왜 노력하지 않을까 자책했다. 그 자책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새 ‘나는 원래 이런 놈이야. 못난 놈이야.’ 하는 수준까지 돼버리고 그 때는 재기하는 것이 더욱 힘들어진다. 누구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 찰나의 후회를 매번 보내버리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내면에서 울려오는 목소리를 무시할 수는 없다. 자기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잠시 자신의 인생이 옆길로 벗어나 있었던 것 같아도 그걸로 심하게 자책할 필요는 없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바꿀 수 없는 것이고, 우리가 행동할 수 있는 건 현재이며 그로 인해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영화 <아이언맨>으로 천문학적인 몸값을 자랑하는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20대 때 마약 복용으로 인해 교도소와 재활센터를 수시로 드나들었다. 말이 교도소이지, 마약을 하다가 교도소에 수차례 들어간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누가 그가 장래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가 될 거라 생각하겠는가. 하지만 그는 자신의 힘으로 미래를 바꾸었다. 어제까지의 삶이 엉망진창이었어도 반성한 뒤 오늘부터 바르고 깨끗한 삶을 살 수 있는 게 바로 인간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