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걸 하자 (3)

안장 위에서 찾은 행복

by 유송

안장 위에서 찾은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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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때 운동이라곤 가끔 푸시업이나 했던 내가 공중보건의 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전거 구입이었다. 차를 사기엔 돈이 없었고 걸어서 다니기엔 보건소가 조금 멀었다. 게다가 천성적으로 달리는 걸 싫어해서 운동을 하기 위한 다른 수단이 필요했기에 자전거만한 게 없었다.

하이브리드 자전거를 사 며칠 타고 다니다 내가 곧바로 향한 곳은 내 친구가 공중보건의로 일하고 있는 영동군이었다. 계룡시에서 영동군까지는 아주 먼 거리는 아닌데 낙타 등처럼 오르막내리막이 반복되는 코스라 초보자에겐 무척 힘들었다. 원래 친구와 점심만 먹고 다른 곳으로 떠나려 했던 나는 친구를 만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하루만 자고 갈게.”

다음날 허벅지 뒤쪽이 말도 못하게 아파왔다. 2층에 있는 친구의 방에서 1층으로 내려가려면 난간을 붙잡고 한 발씩 디뎌야 할 정도였다. 그렇게 해도 통증 때문에 이를 악물어야 했다. 그럼에도 페달질을 하는 것은 괜찮았기에 나는 계속해서 자전거를 탔다. 자전거를 타다가 다리가 아프면 쉬었고, 그래도 아프면 내려서 걸었다. 그러나 푹 쉬질 않으니 인대가 늘어났는지 결국 마지막에는 진통제를 먹고 차가운 파스를 뿌려가며 달려야 했다. 고생도 그런 고생이 없었다. 그렇게 며칠에 걸쳐 부산 낙동강 하구까지 내려갔는데 그게 나의 첫 장거리 자전거 여행이었다.

정말 다리가 아팠고 허기에 지쳐 다 포기하고 싶은 적도 많았지만 그렇게 낙동강 하구까지 내려갔을 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이 컸다. 책상 머리맡에서만 살아온 내가, 두 다리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건 또 다른 만족이고 행복이었다. 나는 내가 자전거에 빠져 들었다는 걸 직감하고 곧 자전거를 더 가벼운 로드형으로 바꾸었다.

그 뒤로는 자전거를 숱하게 많이 탔다. 섬진강 자전거길만 해도 서너 번 종주를 했고, 새재오천 길, 낙동강 길, 금강 길, 파주, 양평, 이천 등 온갖 곳을 간 다음 나중에는 자전거를 끌고 울릉도와 대마도 일주까지 하게 됐다.

자전거는 어딜 가든 누구보다 빠르게 가도록 하면서도 쉽게 지치지 않게 하는 경이로운 두 발이었고, 나는 안장 위에서 페달질을 할 때면 매 순간마다 자유와 성취감을 느꼈다.

나는 답답할 때면 언제나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계룡시 엄사면에는 무상사라는 절이 하나 있다. 짧은 언덕 위에 자리한 그 절까지 최선을 다해 자전거를 타고 가서 절 앞 보도블록에 걸터앉아 바람을 쐬면 그렇게 마음이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걸을 때는 바람을 쐬기 힘들다. 달릴 때는 얼굴이 너무 달아오르고 무릎이 아파 바람을 느낄 여유가 없다. 자전거를 탈 때만 비로소 바람이 나를 감싸고 마음의 열을 식혀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자전거를 타면서 새로운 사람도 많이 만났다. 우연히 블루로드라는 포카리 스웨트의 행사에 참석했다가 제주도 자전거 여행에 당첨됐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는 일 년에 한두 번 모여 바비큐 파티를 하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그 중 두 명은 계룡시 지척인 대전에 살아서 더더욱 자주 보고 지냈다. 친구라고는 함께 근무하는 공중보건의들 말고는 거의 없는 군생활이었는데 가뭄에 단비 같은 친구들이었다.

사실 자전거는 의사로서도 하체 운동이 부족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아주 많이 권하게 되는 운동이다. 특히 노인들은 스쿼트나 런지를 수행할 근력이 부족하고 그런 운동을 할 경우 힘이 풀려 부상을 당할 수도 있는데 자전거는 많은 근력이 필요하지 않아 대부분이 수행할 수 있고, 특히 실내 자전거는 거의 부상의 위험이 없어서 많이 추천 했다. 여행을 다닐 수 있다는 것도 좋지만 건강관리의 측면에서도 늘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거나 책을 보는 나 같은 사람에게 심폐지구력과 하체 근력을 동시에 키워주는 환상의 운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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