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걸 하자 (2)

드럼의 발견

by 유송

드럼의 발견

4회.jpg

고등학생에게는 대학교에 대한 환상이 있다. 힘들다고 할 때마다 선생님들이 “대학만 가면 다 할 수 있어.”라고 하시기 때문에 정말로 대학에 가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연애, 술 마시기, 동아리 활동…. 8시부터 10시까지 공부만 해야 하는 일상에 비하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나에겐 그 중 ‘밴드부 가입’이야말로 대학에 가면 꼭 해야 할 일 중 하나였다.

밴드에 가입하기 전 내가 즐겨듣는 음악은 아주 대중적이었다. 버즈, 박효신, SG워너비 등등. 그런데 밴드에 가입했더니 내가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음악을 첫 연주곡이랍시고 던져주었다. 롤러코스터, Hoobastank, 에이브릴 라빈의 음악이었다. 그냥 그 음악을 들으라고 했으면 아마 듣지 않았을 것이다. 굳이 내가 듣던 음악에서 그리로 갈아탈 만큼 매력적으로 들리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드럼을 직접 치기 시작하면서 나의 음악 취향은 180도 바뀌어 버렸다. 그 전에는 음악을 들을 때 가사와 멜로디를 위주로 들었다면 이제는 오직 드럼 소리만 듣게 된 것이다. 소리를 듣는 관점이 아예 달라졌으니 듣는 음악이 같을 수가 없었다. 천지개벽이나 마찬가지였다.


1학년 때 가입한 동아리 활동은 일주일에 네 번 연습을 하는 것으로 나의 일상을 앗아갔다. 드럼실력은 빠르게 늘었지만 오직 드럼만을 연주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다채로운 캠퍼스 라이프의 한 부분으로 동아리 활동을 하고 싶었던 나는 불만이 높아갔다. 그러다 회원들과 자주 다투게 되었고 결국 3학년이 되기 직전의 겨울 방학에 탈퇴를 선언하고 동남아 여행을 떠났다.

막상 동남아에 갈 때는 너무 신이 났다. 이제 일주일에 네 번 하는 연습도, 방학이면 잠도 자지 않고 몰아서 하는 일주일의 합숙도 없었다. 배울 의욕이 없는 후배를 달랠 필요도 없고,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 하는 선배 말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보름 남짓 동남아의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이었다. 방콕의 카오산 로드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라이브 연주가 아닌 어딘가의 가게에서 틀어놓은 평범한 음악이었다. 그런데 그 음악에서 드럼 소리만 따로 뽑아놓은 것처럼 선명하게 내 귓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건 분명 (신이 있다면) 신이 보내는 메시지였다. 내 안에서도 ‘사람에 질려 동아리를 그만 두고 싶을지언정 드럼을 놓치고 싶지는 않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나는 다시 동아리로 돌아갔다.

2017년은 내가 드럼을 친 지 10년이 된 해여서 그동안 모아둔 악보를 세어봤다. 총 116곡의 악보를 그리고, 연습하고, 공연을 했다. 공중보건의를 가서 첫 월급을 받자마자 산 게 나만의 드럼페달과 전자드럼이었고, 계룡에서 서울까지 오가며 프로 드러머에게 레슨을 받기도 했다. 처음에는 어떤 의무와도 같이 ‘대학생이니까 밴드를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내 인생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는 평생 취미가 된 것이다.

드럼을 칠 수 있다는 것은 연주 가능 여부를 떠나 내가 어디에 가든 “저는 드럼 치는 사람입니다.”라고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저는 음악 하는 사람입니다.”나 “저는 연주할 줄 아는 악기가 있습니다.”와 같다. 세상에 음악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고 악기를 연주 할 수 있다는 건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사가 된다. 드럼은 내게 음악을 듣는 법을 알게 해 줬고, 악기 연주의 즐거움을 알게 해 줬고, 사람들 앞에서 무대의 주인공이 되는 기쁨을 알게 해 줬고, 포기하지 않고 연습하면 실력이 증진된다는 간단한 사실을 체감시켜 줬다. 한마디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줬다.

이전 02화하고 싶은 걸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