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자도 악생이를 다녀오다
낚시를 시작한 이후 갯바위낚시에 대한 로망은 늘 있었다. 발 놓을 공간 밖에 없는 곳에 서서 멋진 포물선을 그린 낚싯대를 들고 대물과 승부를 벌이는 인간. 그거야말로 모든 낚시 장르를 통틀어 가장 멋진 그림이 아닐까.
하지만 갯바위낚시는 선상낚시와 달리 상당히 입문 장벽이 높았다. 어디서 배를 타는지 몰랐고, 좋은 포인트를 몰랐고, 무엇을 보고 낚시를 하는지 등등 모르는 것 투성이라 갈 수조차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동호회에서 알게 된 분을 통해 처음으로 추자도 근방에 있는 악생이라는 포인트로 갯바위낚시를 가게 되었다.
이야기를 하자면, 새벽 1시에 출항하는 것부터가 일반 선상낚시와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지만 가장 색다른 점은 하룻밤을 온전히 무인도에서 보낸다는 거였다.
‘갯바위’ 하면 마치 작은 바위 하나만 있는 것 같은 느낌이고, 실제로 그런 포인트도 있다. 하지만 내가 내린 곳은 하나의 작은 무인도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온통 바위뿐이라 가뭄에 콩 나듯 바위에 뿌리내린 식물만 있고, 그 바위는 파도에 부서져 칼처럼 날카롭다. 바위섬의 끝에서 끝까지는 천 걸음은 족히 될 듯했다.
악생이에 처음 도착한 새벽 3시, 짐과 우리를 내려주고 배가 떠나자 비로소 바다 한가운데 남겨졌다는 실감이 났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수평선 위로 멀리 추자도의 불빛 몇 개가 보였고 달빛도 없이 검은 하늘은 별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 그제야 비로소 옛사람들이 별을 보고서 밤바다를 항해했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그건 밤하늘의 유일한 빛이자 볼거리였다.
우리가 말을 하지 않으면 들리는 것은 파도소리뿐이었다. 철-썩. 그건 지구가 생기고 바위가 솟아나고 바다가 생긴 이래 셀 수 없이 반복되어 온 소리일 터였다. 좋거나 나쁜 의도가 없는 그 소리에는 어쩐지 마음 한구석을 위로해 주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아침이 되자 하늘은 놀라운 속도로 밝아졌다. 분명 세상에 우리 밖에 남지 않은 듯한 밤이었는데, 어느 순간 별빛이 옅어진다 싶더니 동쪽에서 나타난 작은 노란 점이 뻗어나가며 노란 하늘이, 그리고 곧 파란 하늘이 되었다.
머잖아 작열하는 태양이 머리 위로 올라오며 밤은 완전히 종식을 고했다. 이제는 세상에 낮만 남았고 다시는 밤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바다는 새벽에는 은빛으로, 낮에는 쪽빛으로 넘실거렸다. 언제 검었냐는 듯 새파랗게 빛나기만 했다.
점심때쯤 배가 우리를 데리러 와 낚시를 마치고 갯바위를 떠났다. 엄청나게 고요한 밤이었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어둠 속에 움직였던 그 밤을 나는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