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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반드시 함께 치료받아야 하는 경우

by 유송

37세의 단아한 여성분이 난임 상담을 위해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습니다.
첫인상은 참 좋았습니다. 얼굴빛도 맑고, 눈동자도 생기가 돌았습니다. 겉모습만 보면 건강에 큰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진료라는 것이 그렇듯, 겉으로만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맥을 짚고, 배를 눌러보고, 손끝과 발끝의 온기를 살펴보았습니다. 결과는 예상과 달랐습니다. 손발이 전반적으로 차갑고, 아랫배에도 따뜻한 기운이 부족했습니다. 월경 주기는 일정하지 않아 배란 시점을 정확히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

“우선 몸을 덥히고, 월경 주기를 바로잡는 것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말씀드리고 한 달 분량의 한약을 처방했습니다. 생활습관 조언도 함께 드렸습니다. 찬 음식과 음료를 줄이고, 자는 시간을 일정하게 맞추며, 가벼운 운동으로 순환을 돕도록 안내해 드렸습니다.

한 달이 지나 다시 뵌 그녀는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습니다. “손발이 많이 따뜻해졌어요.”라고 말씀하시며 웃으셨습니다. 피부빛도 전보다 생기가 돌고, 맥도 조금 더 탄탄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디선가 살짝 머뭇거리는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혹시 무슨 고민이 있으신가요?”
제가 조심스럽게 여쭈었습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남편이… 검사를 안 하려고 해요. 자기는 건강하다고, 아무 문제없다고 하거든요. 병원도, 한약 치료도 싫다네요.”

그 순간, 저는 마음속에서 ‘이 길은 두 사람이 함께 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난임의 절반은 남성 요인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정자는 매일 새로 생성되지만, 그 질과 운동성은 생활습관, 스트레스, 건강 상태에 크게 좌우됩니다. 한 사람만 노력해서는 임신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환자분께 말씀드렸습니다.
“혹시 남편분께 드릴 수 있도록, 간단한 편지를 써드려도 될까요?”

그 자리에서 저는 정성스럽게 편지를 썼습니다.


“난임은 부부가 함께 풀어야 하는 숙제입니다.
임신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원인의 절반은 남성 쪽에서 비롯됩니다.
정자는 매일 새롭게 만들어지지만, 그 질과 운동성은 생활습관과 건강 상태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검사는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첫걸음입니다.
건강하다고 느끼더라도, 실제 검사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아내분이 몸을 준비하듯, 남편분도 함께 준비할 때 임신 가능성은 훨씬 높아집니다.
두 분이 나란히 가는 길이, 부모라는 새로운 출발선으로 이어집니다.”


그녀는 편지를 소중히 가방에 넣었습니다.

몇 주 후, 남편분이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습니다. 39세, 깔끔한 차림새에 건강해 보이는 체격이셨습니다. 그러나 타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를 보니 정자의 운동성이 정상 범위보다 확연히 떨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맥진과 복진으로 전반적인 체질을 살핀 후, 남편분께 맞는 한약을 처방했습니다. 생활습관도 함께 교정하기로 했습니다. 늦은 밤 과음, 잦은 야식, 과도한 커피 섭취를 줄이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도록 권유했습니다.

그렇게 부부는 나란히 한약을 복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챙기며 생활습관을 조금씩 바꿔나갔습니다.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진료가 끝나갈 무렵 제 휴대전화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원장님… 임신됐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떨림과 기쁨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저도 그 순간, 가슴이 뭉클해져서 웃음이 번졌습니다.
“정말 잘하셨어요. 두 분이 함께 노력하신 결과입니다.”

임신 준비라는 여정은 마치 달리기와도 같습니다. 한 사람이 먼저 결승선을 통과해도, 다른 한 사람이 뒤에 남아 있다면 그 결승선은 의미가 없습니다. 부부가 함께 발맞춰 달릴 때, 비로소 새로운 출발선—부모라는 길목—에 설 수 있습니다.

그날 저는 다시 한번 확신했습니다.
난임 치료는, 반드시 함께 가야 도착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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