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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마음으로

by 유송

진료실에 들어오신 환자분은 기초수급자이셨습니다. 기본 진료비는 0원이니 내원 자체에는 큰 부담이 없으셨습니다. 문제는 몸이었습니다. 온몸의 관절이 이미 오래된 통증을 품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발목이 특히 심하셨습니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얼굴이 굳으셨고, 잠깐 서 있기만 해도 발목이 금세 아파진다고 하셨습니다. 진통제를 드시고 계셨지만 하루를 버티는 데 그칠 뿐, 내일이 달라지는 느낌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차근히 살펴보았습니다. 환자분을 눕게 한 뒤 발목 내측부터 만져 보았습니다. 손끝 아래로 느껴지는 조직이 전반적으로 단단했습니다. 오랜 긴장과 염증으로 인해 유연해야 할 층들이 한 덩어리처럼 굳어 있었습니다. 복사뼈 안쪽을 따라가며 눌러보니 군데군데 날카로운 압통이 있었습니다. 외측으로 넘어가자 상황은 더 분명해졌습니다. 복사뼈 바깥과 발등 쪽으로 이어지는 띠 모양의 조직이 줄줄이 당겨 있었고, 살짝만 비틀어도 통증이 번쩍 올라오셨습니다. 열감, 부기, 단단한 긴장—정상이라 부르기 어려운 징후들이 내측·외측·전면 곳곳에 있었습니다.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구나.’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오래 축적된 염증과 순환 정체가 한꺼번에 얽혀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우선은 통증의 고리를 끊어야 했습니다. 침으로 굳은 결을 풀고, 뜸으로 얼어붙은 흐름을 덥혀 돌렸습니다. 피부에 직접 뜸을 얹으면 어김없이 환자분의 얼굴이 잠시 편안해지셨습니다. “지금은 좀 가벼워요.”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저도 안도했습니다. 하지만 치료대를 내려오고 일상을 마주하면 다시 통증이 차오른다고 하셨습니다. 뜸의 따스함이 통증을 덮어주긴 하지만, 근본의 허약과 마모, 재생의 부족까지는 채워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잠깐의 평온 뒤에 찾아올 무력감이 늘 아렸습니다.


재생과 보강의 영역에서는 약이 꼭 필요했습니다. 닳아 없어진 데를 다시 채워 넣고, 부은 곳을 가라앉히며, 흐트러진 균형을 안쪽에서부터 세워야 했습니다. 침과 뜸이 길을 열어 주면, 약은 그 길을 따라 들어가 몸을 고르게 채워줍니다. 그러나 비용이 문제였습니다. 기초수급자의 형편을 알기에, ‘가장 좋은 방법’을 알면서도 쉽게 권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원장님 덕분에 많이 편해졌어요.” 환자분은 늘 미소를 지어 주셨지만, 그 미소가 제 마음의 씁쓸함을 더 깊이 당겼습니다. 오늘 통증이 줄었다는 사실과, 내일도 비슷할 것이라는 예감 사이에서, 우리는 작은 다리를 놓듯 하루하루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진료 기록에는 반복해서 같은 문장이 남았습니다. 내측·외측·전면 전반적 긴장 및 부종. 침·뜸 후 단기 호전. 근본적 보강 필요. 의무기록의 언어는 간결했지만, 그 뒤에는 환자분의 하루가 있었습니다. 장을 보러 갈 때 발목을 아끼느라 둘러 걷게 되는 길, 버스 노선의 계단 몇 칸이 더 높게 느껴지는 오후, 잠들기 전 발목을 주무르다 한숨이 길어지는 밤. 그 모든 순간을 떠올리면, “최선”이라는 단어가 때로는 다짐처럼, 때로는 변명처럼 제 가슴에 걸렸습니다.


저는 치료자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을 탓하기 전에, 제 손이 닿는 범위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더 분명히 하기로 했습니다. 침과 뜸으로 통증의 파도를 낮추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운동을 세밀히 알려드리고, 발목에 무리가 덜 가는 동선을 함께 그려 보았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형편이 허락된다면 반드시 약으로 속을 채워 보자고, 그때는 오늘보다 더 멀리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약속 아닌 약속을 제 마음속에 적어 두었습니다.


진료실 문이 닫히고, 빈 의자에 남은 따스함을 잠시 만져 보았습니다. 의료는 때로 비용의 언어로 계산되지만, 통증은 언제나 사람의 언어로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내일도 침을 잡고, 뜸을 지피고, 조심스레 묻고 듣고 말할 것입니다. 환자분이 “오늘은 어제보다 덜 아팠어요”라고 말씀하실 수 있도록—작은 한 걸음이 쌓여 언젠가 큰 걸음이 되는 날까지, 씁쓸함을 삼키며, 그러나 따뜻함을 잃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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