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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영 Oct 27. 2021

달리기로 용기+1을 획득하였습니다.

서울로 올라갈  가방에 별도로 챙기는 것은 러닝화이다. 운동선수도 아닌데 달리기를 위한 별도의 신발과 아이템들을 가방에 넣는다. 환절기를 염두하여 휴대성이 좋은 바람막이 외투를 사두었는데, 10월의 기온은 10도나 떨어져서 쓸모가 없어졌다. 뛰고  이후 체온을 유지시켜  옷은 뭐로 할지, 손에 쥐고 뛰어야 할지 허리에 메어야 할지 생각이 복잡해진다. 달리기에 꽤나 진심인  싸기가 아닐 수 없다.


수원에서 기차를 타고 30분가량이 지나면 푸르게 트인 하늘과 한강이 등장한다. 용산역에 도달하기  철교로 횡단하는 한강은 크고 넓다. 풍경이 빠르게 흘러가기에 의자에서 허리를 세우고 눈에 열심히 담는다. 풍경 끝에는 울창하고 멋진 메타세이어 나무와 소박한 길이 이어져 있다. ' 길을 달릴 거야' 생각도 잠시, 금세 차들로 빼곡한 강변북로가 나오고 이곳이 서울임을 실감한다.   푸르른 강물을 따라 달릴  있으리라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다.


서울은 마냥 애정 하기에 어려운 도시지만 한강은 예외이다. 큰 물에 대한 동경이라고 해야 할지, 유유히 흐르는 큰 물을 넋을 놓고 바라보는 것으로도 마음이 놓인다. 강바람이 가슴에 파고들고 찰랑이게 지속되는 수면과 햇볕이 부서지는 윤슬은 오래 두고 바라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강을 실컷 보고 돌아서면 어쩐지 마음이 개운해진다. 목욕을 하고 나온 것 마냥 어딘가 멀끔해진 기분이다. 탁해진 마음을 씻어내기 위해 자주 한강을 앞에 두고 '물 멍'을 때리나 보다.


마음에는 여러 이유로 때가 낀다. 창작을 하면서 느끼는 막연함, 우월감과 한 끗 차이인 열등감, 거기에 부모를 돌보려고 화성에 머무는 시간들은 회색 아파트의 삭막함과 함께 더 짙게 꾸덕해졌다. 어쩌면 달리기는 매일의 때를 밀어내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다. 본격적인 러닝은 2020년 가을부터였다. 그 전에도 나름의 뜀박질은 하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속이 좀 더부룩해서 공원을 빨리 걷거나, 기분이 내키면 우다다 달리는 정도였지만. 핸드폰에 러닝 어플을 설치하고, 유튜브에 '러닝’을 검색해 본 알고리즘이 누적되면서 천천히 멀리 달리는 세계를 알게 되었다.


대부분 초보자에게 ‘10km' 목표로 제안하였다. 옆사람과 대화할  있는 정도의 빠르기와 다리를 보호해주는 러닝화를 갖추면 누구나 10km까지는 달릴  있다고 하였다. '도대체 사람이 어떻게 10km 씩이나뛰는 것인가?' 엄두가 나지 않았다. gps 켜고 달려보니 내가 뛰던 거리는 생각보다 짧았. 시키는 대로 느린 속도로 균일하게 달려보니 거리는 금세 4~5km까지 늘었다.  발씩 달려 나간 나의 속도와 거리는 핸드폰에 착실히 기록되었다. 매일 구체적으로 성장한다는 재미만큼 무서운  없다.


병점의 작은 공원은  바퀴에 350m 정도였고,  트랙을 벋어나 어떻게 하면  멀리   있는지 지도를 보고 코스를 짜보았다. 신도시의 아파트 단지에서는 요리조리 연구해도 3km 이상의 코스 나오지 않았다. 모든 아파트는 차도로 섬처럼 끊어져 있었고, 그나마 구봉산을 둘러싼 단지 주변의 인도를 크게 돌면 3km 나왔다.  바퀴에 3km 코스를 반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바퀴를 넘어갈즈음 보도블록 말고   편히   있는 곳을 생각하게 되었고 눈은 한강으로 갔다. '그래, 서울에 올라가면 한강을 뛰어야겠다.'    



서울에는 나의 작은 . 운이 좋게 걸려든 임대아파트가 있다. 옥수역과 가까웠고 횡단보도 2개를 건너면 바로 한강이 나왔다. 비싼 아파트 단지의 가장 바깥쪽으로 밀어 놓은 임대동에 나의 집이 있다. 작은 집이지만 나와 애인이 주말을 보내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숙소였다. 언제든 한강이나 응봉산으로 커피를 내려가서 산책을 하고 멍하니 앉아있다가 돌아왔다. 따로 캠핑이나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좋을 만큼 풍경은 충분했다. 농담으로 서울  화분에  주러 올라간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휴식과 환기를 주는 고마운 집이다.


서울은 정말 달리기에 최적화된 도시. 한강의  물을 따라 길고 끝없이 뻗은 길을 달리고, 돌아올 때는 따릉이나 전동 킥보드를   있으니 걱정 없었다. 옥수를 기준으로 4km 뛰면 잠수교가 등장하며 차도로 길이 잠시 끊긴다. 횡단보도 너머의 길은 어디로 이어지는지 지도를 확대하고 거리를 가늠했다. 멀리 뛰어도 돌아올  있는 대중교통을 확인하니 자연스럽게 지하철이 연결되는 곳까지가 (goal) 되었다. 7km 뛰면 한강철교와 용산역이 있었고, 10km 뛰면 마포대교와 마포역, 13km 뛰면 합정역이 나온다.


추석에는 드디어 10km를 뛰어 마포역에서 한산한 지하철을 타고 유유히 집으로 돌아왔다. 뛸 수 있는 만큼 끝까지 뛰어도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게 제일 좋은 점이다. 병점동의 보도블록을 뛰면 균일하지 않은 굴곡과 오르막과 내리막이 뒤섞여 있기 때문에 착지하는 발끝에 늘 신경이 쓰인다. 그에 비해 한강이 선사하는 평탄함은 바닥을 신경 쓰지 않고 달릴 수 있게 해 주었고, 멀리 펼쳐진 풍경에 시선을 두고 편히 달릴 수 있었다. 조만간 합정까지 골인하고 맛있는 초밥을 먹고 오겠노라 야심 차게 계획 중이다.



달리면서 한강의 풍경을  세세하게 알아가는 재미도 생겼다. 다리와 다리 사이의 구간마다 한강 둔치의 풍경도 다르다. 잠수교까지는 자전거 도로와 보행로가 합쳐진 큰길위에서 운동하는 이들이 함께 축제에 참가하는 기분마저 든다. 동작대교로 진입하면 보행로만 따로 떨어져서 주변이 고요해진다. 작은 공원과 숲길을 따라 달리면  멀리 노들섬이 둥실 거리며 등장한다. 밤에는 노들섬에 밝혀진 불빛 때문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같아 보인다.


공원마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바람을 쐬러 나와있다. 자전거에 한 짐 싣고 와서 곳곳에 낚싯대를 드리운 아저씨들, 캠핑 아이템을 챙겨 온 커플, 열심히 걷는 노년의 부부, 돗자리만 있어도 신나는 친구들 등 다양해서 귀여운 구석이 있다.



달리기를 마치고 나면 여러 결의 여운이 따라온다. 유산소 운동 특유의 가슴속 후련해지는 느낌, 허벅지와 골반 사이가 또렷이 인지되는 통증, 그리고 이만큼의 거리를 뛰었다는 성취감 등. 근래 들어 이 다양한 여운들이 가닿는 느낌이 무엇인지 헤아려 보았다.


조용하고 깊은 용기였다. 내일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용기 말이다. 마치 삶의 어두운 그늘에서도 언제든 멀리 도망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를 찌들게 하는 현실의 어둠은 늘 암초처럼 고개를 들고 부닥쳐왔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우울감, 상실감, 공허함 등 그런 어둠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한 꾸준한 용기가 필요하다.


달리는 동안 도시의 빛나는 아름다운 풍경이 들숨과 날숨을 타고 몸에 꾸준히 들이차고 나간다. 왠지 지구 끝까지 달려갈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 때 이런 게 러닝에 중독된다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인가 싶다. 펄떡이며 숨을 쉬고 다리를 반복해서 내달리면, 이런 장면에서 영원히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은 환영 속을 달린다. 이번 주도 한강에서 달리는 시간을 기다리며 현실을 기꺼이 마주해본다. 주먹에 힘이 꽉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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