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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민 Dec 13. 2022

신규간호사 3개월만에 퇴사하다.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절대로 간호학과를 선택하지 않았을거다.


학과 공부에 소홀하지 않고 4년간 쉼없이 열심히 달려온 결과는 처참했다.

원하던 대학병원, 그리고 원하는 과에 입사했지만 결과는 3개월만의 퇴사였다.


나는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했다.

내 몫을 제대로 해내는 시간이 아니었으니, 그건 근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배우고 혼나는 시간이었다.

퇴근하고 나면 다음날 준비를 위해 추가 공부를 하느라 쉴 수 없었다.

새벽 두시에 잠들고 여섯시에 일어나는 생활이었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누군가 뒷덜미를 잡아채는 듯한 느낌에 30분 단위로 잠을 깼다.

그렇게 일어날 땐 항상 심장이 쿵쾅거렸다.


3개월간 4kg가 빠졌다.

긴장 상태에서 음식을 먹으면 곧잘 체해서 뭘 먹을 수가 없었다.

출근을 할 때마다, 갑옷 하나 입지 않은 맨 몸으로 화살을 맞으러 가는 기분이었다.

오늘도 온 몸 가득히 화살을 맞으러 가는구나.

그렇지만 나는 도망칠 수가 없어.

정말 도망가고 싶다.

도살장 끌려가는 소 마냥 그렇게 3개월을 다녔다.


신기한건 나의 마음 상태 변화였다.

첫 달엔 누군가 나에게 모진말을 하고 괴롭히면 ‘저 사람은 왜 그럴까’ 생각했다.

다음달이 되니 같은 상황에서도 ‘나는 왜 이럴까’로 바뀌었다.

모든 게 다 내 탓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견딜수가 없었다.

내가 무언가 문제가 있어 이렇게 혼나고 또 혼나는 것이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상황이 불합리하다는 건데 그걸 인정하는게 더 싫었다.


제일 듣기 싫은 말은 “너 공부 안하지.”, “너 잘 할 마음 없지.”였다.

매일 하는데도 그런 얘기를 들으니 참 억울했다.

신기한건 그런 싫은 소리를 계속 듣다 보니 악이 생겼다.

정말로 잘 해내고 싶었던 마음이 사라졌다.

울면서 더 힘내보려던 내가 정말 그 말처럼 공부도 안하고 잘 할 마음이 없어지자 두려워졌다.

이 일을 정말로 진심으로 싫어하게 될까봐.

아이러니 하게도 그만둘 각오로 텅 빈 마음과 동태눈깔을 하고서 출근하자 괴롭힘이 줄었다.

잘한다고 격려해주기도 했다.

그게 더 화가 났다.

여태 내가 들인 노력보다 나의 태도가 그들에게 더 영향을 주었던 것일까.


면담을 하러 갔다.

그리고 붙잡혔다.

그런데 나를 붙잡으면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남아있던 희망이 우수수 떨어졌다.

“쌤 말고도 다른 사람도 다 힘들어. 연차가 쌓여도 힘들어. 다들 그렇게 살아.”

나는 그렇게 살고싶지 않았다.

연차가 쌓이면 나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연차가 쌓여도 힘들다니.

다들 그렇게 산다니.

나는 그렇게 살고싶지 않았다.

그 길로 퇴사했다.


내가 입사하기 전에 많은 신규들이 그만뒀다.

나는 아닐줄 알았다.

하지만 나 역시 그러했다.

나는 강철 멘탈이 아니었다.


나는 입사부터 퇴사, 그 이후까지 나는 나의 자존감과 자아효능감이 완전히 박살나는 경험을 했다.

더 곤란한건 퇴사 이후에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는 사실이었다.

단순히 이 직장이 나와 맞지 않다를 넘어서 이 직업과 맞지 않고, 내가 이 직업을 너무 싫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어쩌다 길을 잘못 든 게 아니었다.

나는 잘못된 길을 너무 멀리 와버렸다.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사실 나는 하기 싫은 일을 잘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대학생활도 실습시간도 잘 견뎌왔다.

그래서 더 오랫동안 나의 욕구를 누르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했을 땐 이미 너무 멀리 와있었다.

다른 일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이었다.

너무 절망적이었다.


나는 왜 그리 싫은 일을 꾹꾹 참으며 살았을까.

하고 싶은 일을 찾기에도 모자란 시간인데.

너무나 바빴던 간호학과 생활이라 그저 눈앞에 보이는 수업과 시험들만 쳐내며 살았다.

그리고 잘 살고 있는거라고 착각했다.

다른 관심사가 생겨도 학과공부가 우선이라 생각했다.

뒤돌아 생각하면 그게 제일 발목을 잡는 일이었다.

할 줄 아는게 학과 공부밖에 없다는 거.


솔직히 나는 다른 분야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더 파볼 생각을 안했다.

성공하고 또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에.

대학병원에 취업하고 적응하고 인정받는 길이 가장 쉬운 길처럼 보였다.

그래서 내 적성이나 욕구는 눌러두었다.

다 내 잘못이다.


그렇게 나는 가진게 면허뿐인 사람이 되었다.

학과 공부에 충실했던 덕분에 괜찮은 학점과 대학병원 취업에 성공하고 졸업했지만 그뿐이었다.

졸업 이후의 삶은 계급장 떼고 붙는 현실이었다.

견뎌서 살아남는게 성공이었다.


이 직장에서 얻은건

나는 강철멘탈이 아니라는 것과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사실

힘을 얻는 것도 잃는 것도 모두 사람에게서 기인한다는 점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그럼 나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걸까.

고민이 깊어져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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