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후 나는 커다란 어둠에 빠졌다.
나는 나에 대한 믿음을 잃었고, 내가 갖고있던 세상에 대한 이상향은 산산히 깨져버렸다.
멋지게 날아오를 줄 알았는데.
비상을 꿈꿨던 새는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심지어 멋지고 하얀 백조일 줄 알았는데, 흔해빠진 잿빛 비둘기였다.
퇴사후 위기 상황을 타계할 멋진 계획 같은건 없었다.
현실은 극도의 대인기피증만 남아있었다.
나는 멋지지 않아.
나는 이제 대학병원 간호사도 아니고, 자기 일을 사랑하는 직업인도 아니야.
사람이 무서워. 세상이 두려워.
사람들은 날 싫어해. 저 사람도 나를 욕한 것 같아.
알아. 이 생각이 정상적이지 않다는거.
근데 내가 너무 많이 망가져버렸는데 어떡해.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나는 원래 이 모습이었던 것 아닐까?
돌아간다는건 모습이 바뀌었을 때 하는 말이잖아.
사실 나는 원래 이렇게 약하고 초라하고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던 것 아닐까?
세상에 도태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몸서리 치며 잠들기를 일주일, 밑바닥을 찍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방 밖을 나설 수 있었다.
기운을 조금 차리고 제일 먼저 한 건 감정과 생각들을 토해내는 일이었다. 토하고, 토하고, 토했다. 가득 토해내고 나니 그제야 보였다. 너무 고리타분하고 낡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여전히 나를 무시하는 생각들이 떠올랐지만, 반박하는 목소리도 함께 떠올랐다.
‘그거 퇴사 좀 했다고, 그거 좀 못버텼다고, 뭐 큰일 나?’
글을 계속 썼다. 고민할수록 답이 떠올랐다.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으면, 그걸 꼭 쥐고 또 글을 썼다. 그렇게 나는 나를 다시 찾아냈다.
퇴사후 한달, 내가 했던 최악의 실수를 찾았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내 인생의 선택권을 내가 쥐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늘 다른 사람의 말을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길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직장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라이프 스타일...
힘든 순간이 왔을 때 견딜 수가 없었던 이유는 ‘내가 온 마음을 다해 충분히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실패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이제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싶어졌다. 그 길이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비루해보이는 길이더라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로소 나는 나를 인정할 수 있었다.
내 인생은 망하지 않았다.
퇴사 까짓거 좀 한다고 인생 망하지 않는다.
중요한건 다시 시작하는 거니까.
좋아. 다시 도전해보자.
이번엔 병동으로 가보기로 했다.
대신 난이도를 좀 낮춰서, 작은 병원으로 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1년, 버텨보는거야.
간호사가 맞는지 아닌지는 그 때 다시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