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을 기점으로 나는 ‘좋아하는 일 조각’을 모으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평소에도 해보고 싶은 일은 차고 넘치게 많았다. 입사하고 업무가 익숙해질 때 즈음부터 그걸 하나둘 시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어떤 시도도 꾸준히 이어지지 못했다. 하나로 한번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하나하나가 수익을 낼 정도로 크게 성공하진 못했으나, 나름의 성과는 있었다. 나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나는 만드는 걸 좋아했다. 손재주도 있는 편이었다. 초등학생일 땐 강아지 옷을 만들었고, 중학생 때는 쿠키를 만들어 선물하곤 했다. 대학생 때는 로프를 엮어 팔찌를 만들었다. 직장인 시절엔 캔들을 제작해서 판매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늘 글을 썼다.
처음엔 내가 수공예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수공예도 잘 하긴 했지만, 그보다 ‘창작’에 대한 욕구가 크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생각하는 디자인이나 레시피를 고안하고 그걸 구현해내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처음엔 캔들을 만들고 판매에도 성공했으니 캔들 공방을 열어볼까 싶었다. 하지만 나는 캔들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다. 특정 디자인의 캔들을 제작하고 나니 빠르게 식어버렸다. 관심이 다른 캔들로 확장되지 않았다. 캔들은 내가 사용하는 소재이자 수단이었고, 내가 좋아하는건 내 아이디어를 구현해내는 감각이었다.
글쓰기도 좋았다. 글을 쓰는건 정신적 해방감을 준다. 생각이 끊임없이 솟아나는 INFP에게 글쓰기는 치료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걸 업으로 삼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글쓰기에도 여러가지 목적이 있고, 세상이 필요로 하는 글은 상업적인 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글은 나보다 잘 쓰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쓰고 싶었다.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욕구는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어쩌면 내가 가진 경험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대학병원을 그만둔 이후로 나를 치유하기 위해 썼던 글이 브런치에 올라가있었다. 더이상 글을 쓰지 않아도 주기적으로 그 글들은 읽히곤 했다. 매해 4월즈음 되면 글의 조회수가 올라갔고(2-3월에 입사한 신규간호사들이 무척 힘들어지는 시기가 4월 전후가 아닐까 싶다), 이따금 메인에 걸리기도 했다.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글도 메인에 두어번 걸렸다.
사람들은 직업 이야기를 꽤 궁금해 하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더이상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내가 메인 파트에 있지 않고, 간호사라는 직업에도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희망찬 이야기만을 전달해주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어 관련된 글을 더이상 쓸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여행은 어떨까? 당시 유튜브가 조금씩 뜨고 있었다. 여행 유튜브에 대한 수요와 공급도 함께 커지고 있었다. 난 여행을 무척 좋아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여행은 다른 사람들의 수요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여행은 보통 자아성찰에 맞춰져있었으니.
이렇게 내부적으로 자아성찰을 하며 고민하고 있을 때, 외부적인 상황은 또 나름대로 바쁘게 흘러갔다. 바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