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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들 Nov 28. 2017

새벽5시면 아직 별도 지지 않았었다



스무살 무렵, 대학 번화가로 통하는 학교 쪽문 앞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기숙사 통금시간이 밤12시였는데, 내 근무도 12시에 끝났었다. 근무를 교대할 때는 포스기를 열어 동전까지 모조리 정산을 해야 했기 때문에 야간 조 알바생한테 15분만 일찍 와주면 안 되겠느냐고 했더니 그는 선선히 그러마 하였다. 그리고는 별로 일찍 안 오는 것이었다.
기숙사에 못 들어가는 날엔 대학가 어딘가에 있는 pc방에 갔다. 게임도 할 줄 몰랐던 그 여자애는 싸이월드에 일기나 좀 쓰다가 자기 몸에 비해 충분히 커다란 의자에 파묻혀 졸았다. 기숙사 문이 열리는 새벽 5시면 아직 별도 지지 않았었다. 그 시간은 계절도 상관 않고 보통 추웠다. 텅텅 빈 캠퍼스를 가로지를 땐 가로등만이 날 지켜주는 것 같아 그 아래로 골라 걸었다. 바람이 무서워 피우는 법도 잘 모르던 담배에 불을 붙이고 종종걸음으로 계단과 언덕들을 내달았다.


그 때 나는 무슨 마음이었나. 사는 게 뭣같다고 생각했었나. 왜 나만 유난히 아등바등인가 생각했었나. 그렇지도 않았다. 춥고 무섭다고 생각했지만, 피곤하고 침대에 눕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에 불행 같은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다. 막막하기도 했지만 그 좌절감이 내일이 오는 의미까지 가로막아 세우지는 않았다. 그냥 속도 없이, 산다는 건 이런 거기도 하구나 싶었다. 나는 그런 새벽과 그런 바람과 그런 마음들로 어른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다음의 시간들을 컸다. 다 커서, 말썽 피우고도 불려갈 데 없는 애를 그것들이 기꺼이 키웠다.

어떻게든 살아가니 살아지던, 그러다보니 나아지던 날들의 내 표정을 기억한다. 그 모든 표정들 다 살아내려 지었구나, 그렇다면 오늘의 내 얼굴도 그런 거겠지, 한다. 못나보니 못나지는 일 뭐 그리 별 것도 아니더라 큰소리 치고, 또 이 시절 살아내야지.



20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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