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버블이 남긴 구조적 상흔

토지 신화와 금융화가 남긴 사회적 비용

by 박상훈

2화. 버블이 남긴 구조적 상흔

― 토지 신화와 금융화가 남긴 사회적 비용



왜 일본은 아직도 버블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1990년 버블이 터진 지 35년이 지났지만,

일본 경제는 여전히 그때의 상처를 안고 있다.


버블은 사라졌지만,

버블이 만든 구조는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토지 불멸 신화의 탄생과 몰락


1980년대 후반,

일본의 부동산은 논리를 넘어섰다.

도쿄 황궁 부지의 가치가 미국 캘리포니아 전체보다 높다는 계산이 나왔고,

당시의 세계인들은 아무도 이를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토지는 줄어들지 않는다는 믿음이

토지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금융기관은 부동산 담보대출을 늘렸고,

제조업 기업들마저

본업보다 부동산 투자에서 더 큰 수익을 올렸다.


경제 전체가 담보 → 대출 → 투자 → 담보가치 상승의

자기 강화 고리에 빠져들었다.


은행의 대출 심사 기준이 바뀌었다.

사업의 수익성보다 담보의 가치가 중요해졌고,

기업의 혁신보다 자산 보유량이 신용도를 결정했다.


돈이 생산적 투자가 아닌

자산 가격 부풀리기로 흘러갔다.


버블 붕괴, 하지만 구조는 남았다


1990년 토지 가격 폭락이 시작되자

일본은 패닉에 빠졌다.


부동산을 담보로 한 대출이 한꺼번에 부실화되면서 은행들은 대출을 급격히 줄였다.

기업들은 과도한 부채를 정리하기 위해 투자를 중단했고,

가계는 자산 가치 하락으로 소비를 줄였다.


모든 경제 주체가 동시에 지출을 줄이면서

경제 전체가 수축의 악순환에 빠졌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디플레이션이었다.

자산 가격 하락은 물가 하락으로 이어졌고,

디플레이션은 부채의 실질 부담을 늘렸다.


명목 부채는 그대로인데 매출과 자산 가치는 계속 떨어지면서,

기업과 개인의 부채 부담은 더욱 무거워졌다.


소비자들은 내일 더 싸질 것이라는 기대로 소비를 미뤘고,

이는 다시 가격 하락 압력을 가중시켰다.


금융화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회


버블 붕괴 후 35년이 지났지만,

일본 사회는 여전히 그때의 트라우마에 갇혀 있다.


기업들은 현금을 쌓는 것을 안전이라 여기고,

은행들은 위험한 대출을 피하려 한다.


가계는 부채를 늘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정부는 재정 적자를 줄이려 애쓴다.


모든 경제 주체가 안전을 추구하지만,

모두가 안전을 추구할 때 경제는 위축된다.

이것이 바로 합성의 오류다.


개별적으로는 합리적인 선택이

집합적으로는 비합리적 결과를 만든다.


사회적 비용의 누적


버블과 그 유산이 남긴 가장 큰 손실은 잃어버린 기회였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인터넷 혁명과 디지털 전환의 시대에

일본은 과거의 부채를 정리하느라 미래 투자를 놓쳤다.


청년들은 취업이 어려워졌고,

중년 직장인들은 평생고용 약속이 흔들리는 것을 목격했다.


사회 전반에 위험회피 성향이 깊이 뿌리내렸다.

부동산 중심의 자산 축적 모델이 무너지면서,

일본인들의 미래 설계 방식도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꿈을 키우기보다는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

생존 전략이 되었다.


한국이 마주한 동일한 위험


지금 한국은 일본의 1980년대와 닮아가고 있다.

부동산 중심의 자산 축적,

가계부채 급증,

내집마련이 중산층의 꿈이자 의무로 여겨지는 사회.


부동산 가격 변동이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일본보다 클 수 있다.


일본의 경험이 보여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자산 버블은 단순히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구조 전체를 바꾸는 시스템의 문제다.


버블이 터지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버블 과정에서 만들어진 구조적 왜곡이

사회 전체를 장기간 옥죄는 것이다.


새로운 성장 모델을 향해


우리는 여전히 땅값이 오르면

경기가 좋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부동산 담보 대출이 전체 가계부채의 핵심을 차지하는 구조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자산 가격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성장 모델을 고민해야 할 때다.


혁신과 생산성 향상에 기반한 성장,

사람의 능력과 창의성에 투자하는 경제.

일본의 35년은 우리에게 경고한다.


버블은 언젠가 터진다.

하지만 버블이 만든 구조적 상흔은

훨씬 오래 남는다.


작은 버블은 작게 터지고,

큰 버블은 크게 터진다.


다음 화 예고

3화에서는 종신고용 신화의 종언 – 일본식 고용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를 다룹니다.

평생직장의 약속이 어떻게 경제적 유연성을 제약했고,

고용 시장의 이중구조가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켰는지

살펴봅니다.


[일본 : 잃어버린 미래가 남긴 구조적 경고]

잃어버린 30년이 한국에 던지는 메시지

1부 2화. 버블의 유산 – 토지 신화와 금융화가 남긴 구조적 상흔

(이 글은 일본 부동산 관련 통계, OECD 2024년 일본 경제조사, 내각부 경제사회총합연구소 2025년 통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25년 5월 전망 등을 종합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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