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평생직장이라는 약속은 왜 무너졌나

― 일본식 고용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

by 박상훈

3화. 평생직장이라는 약속은 왜 무너졌나

― 일본식 고용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



평생직장이라는 약속의 균열


입사식에서 '정년까지 함께하겠습니다'라고 다짐하던 시절,

일본의 젊은이들은 미래가 예측 가능하다고 믿었다.


회사는 가족이었고,

충성은 안정의 대가였다.


그러나 경제가 멈췄을 때,

평생직장의 약속도 함께 멈춰 섰다.

남은 것은 움직일 수 없는 내부자와

들어갈 수 없는 외부자로 나뉜

분열된 노동시장이었다.


종신고용의 황금시대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일본의 종신고용제는 기적에 가까웠다.

대기업에 입사하면 정년까지 고용이 보장되고,

연공서열에 따라 임금과 직급이 상승하는 시스템.


이는 단순한 고용 관계를 넘어선 '사회 계약'이었다.

기업은 직원에게 안정을 주고,

직원은 기업에 충성과 헌신을 바쳤다.


노사 갈등 대신 협력이,

이직 대신 내부 성장이 일반적이었다.


고도성장 시기에는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기업은 장기적 관점에서 인재에 투자할 수 있었고,

직원들은 안정적 소득으로 소비를 늘렸다.


1960년부터 1980년까지 대기업 이직률은 연 3% 미만을 유지했다.

기업 내 교육훈련 투자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고,

노동조합 조직률이 35%를 넘어섰지만 협조적 관계를 유지했다.


경직성의 씨앗


그러나 종신고용제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경제가 성장할 때는 문제없지만,

침체기에는 모든 비용이 기업 내부에 축적되는 구조였다.


기업들은 쉽게 직원을 해고할 수 없어서,

대신 신규 채용을 중단했다.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대부분의 일본 기업들이

'채용 빙하기'를 선언한 이유다.


정규직 보호가 강할수록,

비정규직의 희생이 커지는 역설적 구조가 만들어졌다.


기업들은 유연성 확보를 위해 파견직, 계약직을 늘렸고,

이는 곧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로 이어졌다.


잃어버린 세대의 탄생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어려운 취업 빙하기가 시작되었다.

일본은 이 시기 사회에 진입한 세대를

'잃어버린 세대'라고 부른다.


이들은 기존의 종신고용 시스템에 들어갈 기회를 얻지 못했다.

대신 비정규직, 프리터, 니트족으로 사회에 진입했고,

한번 이 궤도에 들어서면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 구조였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격차는

단순히 임금 차이가 아니었다.

사회보험, 교육기회, 승진 가능성, 심지어 결혼과 출산까지

모든 것이 고용 형태에 따라 결정되었다.


1990년대 말 청년 실업률은 5%를 넘어섰다.

비정규직 비율은 1990년 20%에서 2010년 35%로 급증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격차는 2배 이상 벌어졌다.


혁신의 저해 요소


종신고용제의 또 다른 문제는 혁신 저해였다.

직원들이 평생 한 회사에 머물면서,

외부의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워졌다.


특히 IT 혁명과 디지털 전환 시대에,

일본 기업들의 느린 적응력은 치명적이었다.

실리콘밸리처럼 인재가 자유롭게 이동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생태계와는 정반대였다.


기업 내부에서도 '연공서열' 문화로 인해

젊은 직원들의 혁신적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나이와 경력이 능력보다 중시되는 문화에서,

빠른 변화 적응은 구조적으로 어려웠다.


여성과 외국인의 배제


종신고용제는 본질적으로 '일본 남성 정규직'을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을 기점으로 퇴사하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M자형 고용 곡선이 일반적이었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이 시스템에서 배제되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외부자로 취급받았고,

핵심 업무보다는 주변적 역할에 머물렀다.


이는 일본 사회의 다양성을 제약했고,

글로벌 경쟁에서 필수적인 다문화적 역량 축적을 방해했다.

여성 관리직 비율은 OECD 최하위 수준이었고,

외국인 고용 비율은 2% 미만으로 매우 낮았다.

육아휴직 후 복직률의 남녀 격차도 심각했다.


시스템 변화의 어려움


2000년대 들어 일본 정부와 기업들이 고용 유연화를 시도했지만,

기존 시스템의 관성은 매우 강력했다.


정규직 해고를 쉽게 만드는 법 개정은 정치적으로 어려웠고,

기업들도 급격한 변화보다는 점진적 조정을 선호했다.


그 결과

이중구조는 더욱 고착되었다.

기존 정규직은 여전히 보호받지만,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시작해야 하는 구조.


이는 세대 간 불평등을 심화시켰고,

사회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렸다.


오늘의 교훈


종신고용제가 보여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안정성과 유연성은 영원한 트레이드오프가 아니라,

시대 상황에 따라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문제다.


한국 사회도 비슷한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정규직 보호 vs 비정규직 차별,

고용 안정성 vs 노동시장 유연성,

내부자 기득권 vs 외부자 기회.


일본의 경험이 말해주는 것은,

고용 시스템의 경직성이

장기적으로는 모든 구성원의 기회를 제약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어떤 고용 시스템을 만들어갈 것인가?

정규직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도

비정규직에게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용의 안정성과 노동시장의 역동성,

둘 다를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고민해야 할 때다.


다음 화 예고


4화에서는 제조업 강국의 디지털 실패 –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의 전환 실패를 다룹니다.

세계 최고의 제조업 기술력을 가진 일본이

왜 디지털 혁명에서 뒤처졌는지,

그리고 이것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을 살펴봅니다.


[일본 : 잃어버린 미래가 남긴 구조적 경고]

1부 3화. 평생직장이라는 약속은 왜 무너졌나 – 일본식 고용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

(이 글은 일본 고용통계, OECD 2024년 고용보고서, 내각부 경제사회총합연구소 2025년 데이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25년 분석 등을 종합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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